이순재: 한국전쟁과 서울대 문리대의 낭만

by 변우현의 인물당

#1 한국전쟁

1950년 여름 이순재는 대천해수욕장 놀러갈 생각에 들떠있었다.


6월 25일 친동생과 수영복 사러 명동을 지나다 전쟁 소식을 들었다.


6월 27일 이순재는 가족들과 피난길에 올랐다.

언제 돈이 필요할지 몰라 조부와 비누 장사하며 남았던 재고를 리어카에 실었다.


보은에서 큰 추위를 겪으며 더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옥천의 조부 지인 집에서 겨울을 보냈다.


이순재는 대전고에서 청강했다.


한국인 최초 미 하원의원 김창준과도 이 때 생긴 인연이다.


이순재는 서울고 시절 영화감상 취미가 있었다.


대전에서도 틈나는대로 영화관을 출입했다.

공교롭게도 이순재가 영화관 갈 때면 앞쪽 좌석에 영화를 보는 부친을 발견했다.


영화는 젊은 장르였다.

이순재 부친이 만주 역원 생활로 새로운 문물을 빨리 접했으리라 짐작케 한다.


훗날 이순재가 배우의 길로 들어설 때 부친은 격려를 해준다.

“앞으로의 세상은 뭘 하든 일류가 되면 밥은 먹고 살지 않겠냐”


시대상을 감안한다면 탁월한 자식사랑이자 선견지명이었다.


#2 문리대

이순재는 최고 컷트라인이었던 서울대 정치학과에 불합격한다.


요즘에야 정치학이 로스쿨로 향하는 괜찮은 징검다리 정도로 치부된다.

1950년대 혼란스런 정국 속에 공부 좀 한다는 학생이면 정치학을 지망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처조카이자 최다선 9선 의원인 박준규 전 국회의장도 경성제국대학 의과에 다니다 서울대 정치학과로 전과했고,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6형제 중 LS 구태회 명예회장, E1 구평회 명예회장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현대자동차를 만들어낸 포니정 정세영 회장도 고려대 정치학과에 진학했고,

태권도와 올림픽으로 한국 스포츠의 최전선에 있던 김운용 위원장도 연희대(연세대) 정치학과 출신이다.

이순재는 재수해 1954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한다.


1954년이란 물리적 시간이 유의미했다.


이순재가 배우의 길을 걷는데 절묘한 타이밍이 됐다.


아무리 뛰어난 인물도 시대의 공기와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이순재가 3,4년 일찍 입학했다면 이념과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3,4년 늦게 입학했다면 4.19혁명의 열기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1953년 7월 휴전과 함께 서울대 문리대가 10월에 동숭동 캠퍼스로 돌아온다.


인디언서머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종전으로 인해 학내는 이념적 진공 상태였다.

좌도 우도 아닌 자유롭고 이상적인 시도들이 등장한다.


평론가 이어령, 소설가 오상원, 철학자 박이문, 언론인 김성우 등 서울대 문리대생들의 여러 문학회가 생겨난다.


이순재도 이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본다.


이순재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영화 감상에 몰입했다.

영화 선진국이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영화를 감상했다.


스카라극장에서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햄릿>을 보며 “이건 예술이다” 라며 이순재는 벅찬 감동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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