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웃다 보면 웃어진다고 믿어요

by 김히비

저는 조부모님을 대부분 일찍 여의고, 외할머니 한 분만 살아계십니다. (농담 아닌 농담을 하자면, 부모님은 두 분 다 살아계십니다.)

외할머니는 남자 같으신 분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과거형을 사용하는 이유는, 더 이상 예전의 건강한 모습을 지니고 계시지 않으셔서입니다. 서서히 조금씩 도화지를 지워가는 슬픈 병에 걸리셨거든요.


저는 외할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건 제가 어머니의 형제들에 대해 제대로 인식을 할 수 있던 나이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할머니는, 그저 음식을 배불리 주시고 시골분이라 동물을 그저 가축으로만 대하신다는 점만 빼면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저에게 할머니는 절대 적대적인 사람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점차 제가 나이를 먹고 커가며 알게 된 것은, 딸을 출가외인으로 취급하는 것 또한 할머니의 모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불의를 겪거나 보면 참지 못하는 병에, 그것도 중증 수준으로 걸려있었습니다. 특히나 제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발생할 때 더더욱이요. 그런 저에게는 특히나 용납이 안 되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구시대적인 발상], [무례한 농담]입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구시대적인 발상이 절대 머릿속에서 벗어나지 않을 분이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삼 남매 중 막내딸이셨고, 위로는 오빠가 두 분 계셨습니다. 할머니에게 첫째 삼촌은 장남이라서, 둘째 삼촌은 아들이라서 언제나 소중하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이것을 제가 절실히 느끼게 된 건, 8년 전쯤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는 무슨 이유인지 매번 소득이 불안정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직업 탓에, 고3이던 언니는 대학 등록금마저 낼 수 있을까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때 할머니는 선뜻 내주겠다고 하셨고, 그렇게 저희 가족은 한 고비를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세가 많이 기울어졌고 할머니의 전화 한 통으로 부모님은 매우 당혹스러워함과 동시에, 슬픔으로 가득 차 보였습니다. 그건 바로 할머니의 독촉 전화였습니다.


‘첫째 손주 등록금 내줬던 돈 지금 바로 갚아라, 둘째 아들한테 줘야 하니깐.’


돈이 없던 저희 어머니는 집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저희는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습니다. 제가 할머니를 등지게 되고 동정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요.


(이외에도 차마 공개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지만, 제 슬픔과 분함을 너무 많이 전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제가 근래에 어머니와 했던 대화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엄마, 크면 이해할 거라고 믿었거든? 근데 여전해.

-뭐가?

-할머니가 왜 그러셨을까 가 여전히 이해가 안 돼 난.

-(…)

-나라면 안쓰러웠을 건데. 힘들게 사는 내 딸이.

-그렇지.

-엄마였어도 안 그랬을 거잖아. 난 알잖아 그걸.

-응 나라면 안 그러지. 그런 거에 딸 아들 이 어딨어.

-엄마 난 죽을 때까지 원망스러울 거 같아. 엄마 그때 아빠랑 갈라서려고도 했고, 돈도 없어서 하루하루 겨우 버텼잖아. 우리는 어려서 엄마 얘기를 들어줄 수도 없었고. 그러면 할머니한테 의지를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던 거잖아.

-응 그래도 이해해 봐야지. 옛날 분이시잖아.



할머니는 현재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누군가가 통장을 손댄다고 매일 망상에 빠지시고, 저희 어머니한테 제발 보러 와달라 보고 싶다고 기대고, 한없이 어리고 어리석어지고 계십니다.

(어리석어진다는 표현이 옳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제 소심한 복수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런 할머니는 저에게 전화를 걸고, 언니에게 전화를 걸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거십니다. 그리고 저는 매번 그 전화를 피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점점 머리가 커가면서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건지, 나이 앞에 무너진 할머니를 보면서도 마음이 약해지지 않습니다.


너무 힘들고 외롭게 살아온 우리 어머니한테는 정말 엄마라는 존재가 절실했을 건데, 왜 그렇게 출가외인처럼 대했는지. 왜 중요한 자식 따로 있고, 덜 중요한 자식 따로 있었던 건지. 언젠가 저도 자식이 생기고, 손주가 생기고 그 이후의 나이가 되어 눈을 감게 된다면. 그리고 그 이후의 세상에서 할머니를 뵙게 된다면 꼭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엄마한테는 엄마가 한 명뿐이라. 내가 헤집어놓으면, 우리 엄마는 그런 엄마마저도 없으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여전히 머리를 지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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