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으로 막대한 돈을 쓴 미국은, 마구 찍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는 다른 나라들의 요구에 1971년 이렇게 답한다.
“응, 안돼.”
이른바 닉슨 쇼크(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폐지). 이때부터 미국은 금의 보유량과 상관없이 달러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초반에는 달러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지만, 결국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금으로 바꿔주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파기한 것이었고, 이는 곧 다른 나라들이 보유한 금 채권을 사실상 ‘일방적으로 탕감한 것’과 같았다. 반에서 제일 힘 센 애가 약한 애들 돈을 빌리고 “내일 갚을게” 했다가, 진짜 내일이 오자 “없던 일로 하자”라고 한 셈이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복지 정책의 확대 (great society)로 달러를 마구마구 찍어 댔던 미국은, 1970년대 두 번의 오일 쇼크를 맞으면서 물가가 살인적으로 치솟는 상황이 된다. 이 때 달러를 살리기 위해 폴 볼커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엄청난 고금리 정책을 펼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가까스로 잡혔지만 그만큼 달러는 비싸지게 되었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회복한 독일과 일본 기업들에게 뒤져 큰 무역 불균형이 있었다.
그 때 미국이, ‘아 우리가 일본이나 독일보다 차도 잘 못 만들고 반도체도 잘 못 만드니 더 열심히 노력해서 따라잡자’ 이렇게 했을까? 아니요.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이 이렇게 말한다.
“야. 달러가 너무 비싸져서 우리가 힘들어. 내일부터 당장 갖고 있는 달러들 좀 팔아. 싫으면 무역 전쟁이야 ^^ ”
이른바 플라자 합의다. 결국 3년 만에 엔화에 대한 달러의 가치는 반토막이 난다. 이후 무려 300% 보복 관세를 포함했던 미일 반도체 협정과 맞물려 일본의 반도체 기업은 힘이 빠지고, 이 때 한국 반도체 산업은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잡게 된다. 결국, 반에서 가장 힘 센 그 아이가 반에서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하는 아이에게 “공부 살살 할래 아님 한 대 맞을래?” 식의 반 협박으로 공부를 방해한 셈이다.
빈 종이에 달러를 찍어 세계 화폐로 써대니, 구조적으로 계속되는 빚은 줄어들 수가 없었다. 금을 바꿔준다고 했다가 말을 바꿔도, 물건을 싸고 좋게 만드는 나라들을 윽박 질러서 찍어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 때 그 때 힘으로 규칙을 바꿔 위기를 넘겼던 미국이 강적을 만났다. 바로 중국.
무서운 소련을 막아보고자 시장도 열어주고, WTO 도 가입시켜 키워줬던 중국이 짧은 시간에 너무 커버린 것이다. 세계의 공장이 되어버린 중국은 어느새 미국만이 할 줄 알았던 첨단 산업, 우주 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이 아무리 관세로 윽박질러도 좀체 쫄지를 않는다. 반도체 수출로 제재를 가해도 꾸역꾸역 자신들의 반도체를 만들어내며 버티고 있다. 1985년의 일본과는 영 딴 판이다.
이제 미국은 중국을 이전에 일본이나 독일처럼 손 쉽게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두 번이나 깡패 짓으로 재미를 봤던 미국은, 달콤했던 손 쉬운 방법을 좀 더 약한 (통할 것 처럼 보이는) 일본과 한국에게 하고 있다. 트럼프가 말하는 “3500억 불 낼래, 25% 관세 맞을래?”에서 1971년 닉슨과 1985년 레이건이 들린다.
과연 우리나라는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