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아버지께서 나에게 해주신 말이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데모에 앞장서야 한다는 아들과, 아들의 미래를 위해 뒤로 빠지라는 아버지가 있다. 누구 말이 맞다고 생각하니?”
내가 20살 때는 아들이 맞다고 생각했다. 뒤로 숨는 건 비겁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아이가 생기고 지킬 것이 많아지니 아버지 말씀이 맞았나 하는 생각이 점점 든다.
전 정부의 폭압적인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여 젊은 의사들의 큰 참여를 이끌어 냈던 박단 전 전공의 협의회장이 응급의학과 수련 과정을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나는 (남들 다하는) 전공의 선발에서 두 번이나 떨어져 본 경험이 있고, 그것도 군대에서 3년이나 절치부심하고 재준비해서 또 떨어져 본 경험이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항을 했다 전 국민의 미움을 받게 된 박단 선생이 어떤 마음일지 감히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번이나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 낙오되었던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시간이었었음을 생각해보면, 지금 그가 어떤 마음일지 어렴풋이는 알 것도 같다.
2007년 삼성의 뇌물과 비자금을 내부 고발했던 김용철 변호사라는 사람이 있다. 검사 출신이었던 김 변호사는 삼성 내부에 만연했던 모럴 해저드에 인생을 걸고 저항했다. 결론이 어떻게 났을까? 대대적인 특검 조사가 이뤄졌지만, 에버랜드 전환사채 합병 관련 불법 승계 문제에서 무죄 등 경영권 유지와 관련한 대부분의 문제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이후 삼성을 포함한 대기업에서는 ‘대놓고 해먹는’ 일은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내부 고발자였던 김용철 변호사는 이후 큰 고통을 겪었다. 잘 나가던 특수 검사는 지방 관청의 계약직 변호사로 근근히 지내게 되었고, 삼성을 포함한 어떤 대기업도 수임을 주지 않으려 했다는 후문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당시 커리어의 정점에 서 있었지만, 박단 선생은 아직 본인의 전문 과정을 시작조차 못했다. 게다가 김 변호사에게는 힘 있는 자들이 저지르는 불법의 폭로라는 국민적 지지를 받는 명분이 있었지만, 필수 의료를 지키겠다는 젊은 의사들의 명분은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내가 겪은 고통과 비교가 안되는 큰 고통을 겪고 있을 박단 선생에게, 나는 이렇다 저렇다 할 주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젊은 의사들의 희생이 아무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위로해 주고 싶다. 적어도 이런 무식한 방법으로 의대 증원을 다시 시도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고, 의사를 늘리는 방법만으로는 필수 의료가 확충되기 어렵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한국 사회에서, 정을 맞으면서도 나무 속으로 박혀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건 너무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의사와는 다른 엄청난 커리어를 갖고 있는 이 젊은 청년이, 전문의 자격증에 너무 천착하지 말고 본인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분야로 뻗어 나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