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by 친절한 손원장

유발 하라리의 명저 사피엔스를 읽었다. ‘빅 히스토리’의 이야기 꾼 답게 호모 사피엔스의 수십 만 년 역사를 6백페이지에 녹여 놓았다.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 준 흥미로운 포인트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1. 우리 인간 (호모 사피엔스) 말고도 많은 인간들 (호모 속) 이 있었다.


생물계의 분류는 아래에서 위로 종/속/과/목/강/문/계의 체계를 갖는다. 우리 인간은 ‘호모 속’에 속하고, 더 세분하게는 ‘사파엔스 종’에 속한다. 놀랍게도, 2백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오랜 시간 동안 ‘호모’ 속의 여러 인간 종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에렉투스, 플로레시엔시스, 데니소바, 에르가스터, 루도펜시스 등등.. 즉. 인간은 하나의 계통으로 모습을 바꿔 진화해 온 게 아니라, 종류가 다른 인간들이 함께 살다가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것이다. 충격적이게도 유럽 인구 DNA의 1~4%는 네안데르탈인에서 왔고, 한국인의 DNA에는 호모 에렉투스의 DNA가 있다. 3만 년 전 네안데르탈 인은 멸종했고, 최소 1만년 전 부터는 사피엔스가 유일한 인간으로 남았다.


2. 사피엔스의 강점은, 언어를 통한 집단 상상이다.


150명이 넘는 집단은 개인적인 친분 만으로 유지될 수 없고, 집단이 함께 상상하고 지지하는 허구가 필요하다. 종교, 사회, 법, 국가 모두 사피엔스가 만들어 낸 허구이지만, 실재로 존재하는 가상의 실재이다. 저자는 7만 년 전 일어난 이러한 ‘인지 혁명’이 사피엔스로 하여금 커다란 집단을 만들어 체계적인 사냥을 하고, 급기야 호모 족의 다른 인간들을 멸종시켰다고 했다.

가상의 실재가 만들어 낸 상상의 질서는 기원전 1776년 합무라비 법전에도 있고, 기원 후 1776년 미국 독립 선언문에도 있다.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고, 우리의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우리는 절대로 이 상상의 질서를 벗어날 수 없으며, 당신이 써 내려간 버킷리스트는 현 사회가 당신 뇌에 주입한 욕망일 가능성이 높다.


3. 우리는 정착하기 전 수 만 년 동안 떠돌아 다녔으며, 그 때부터 생태계를 파괴해 왔다.


직장과 일터를 왕복하는 것은 애초에 우리가 사는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는 적어도 7만년 이상 수렵 채집인으로서 여기저기 우르르 몰려 다니며 살았고, 나무 위에 열매가 있으면 먼저 가서 따먹기 바빴다. 살기 위해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골고루 먹고 많이 이동하니 건강했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아빠인지도 모르며 지냈고, 힘 있는 남자는 무리에 부담이 되는 미숙아와 노인, 여자를 상습적으로 죽였다. 무리 내의 약자들만 죽인 것은 아니었다. 생태계의 다른 동물들을 다 죽여가며 지냈다. 7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다른 대륙에 도착할 때마다, 그 대륙에서 수 백 만년 살아왔던 대형 포유류는 멸종됐다. 4만 5천년 전 호주의 큰 캥거루가 그랬고, 12000년 전 시베리아의 매머드가 그랬다.


4. 농업 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이다.


수렵 채집을 끝내고 한 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약 1.2만년~1만년 사이 농업혁명은 세계 여러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났다. 농부들은 수렵채집인 선배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지만, 굶주림과 질병에 더 시달렸다. 농사에 쓰려고 길들인 가축은 전염병을 가져왔고, 소출이 는 것 보다 인구가 더 늘어나 수렵 채집인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당장 먹여 살릴 인구가 많으니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고대 농부의 모습은, 소득이 느는 만큼 늘어나는 카드 값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묘하게 닮았다. 잉여 생산물은 지식 계층의 등장을 불러왔고, 그들은 교묘한 가스라이팅으로 피라미드 같은 대형 건축물의 건설을 강요했다. 각 구성원은 오히려 더 팍팍한 삶을 살게됐다.


5. 역사는 ‘통합’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기원 전 1만 년 경 지구상의 고립된 문화는 수 천 개였다. 기원전 2 천 년에는 이게 수 백 개로 줄었고, 인류가 대양을 건너기 직전인 1450년에는 5개로 줄었다. 이 5개에는 인류 90%가 있는 아프로아시아와 나머지 10%가 속하는 4개의 문화권(북중미의 메소아메리카, 남미의 안데스, 호주, 대양세계)이 있었다. 통합의 보편적 질서는 돈, 정치(제국), 종교 이 세 가지가 있다. 돈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있고, 모르는 사람 사이의 신뢰를 구축하는 장점을 바탕으로 수백만 인간의 협동을 이끌어 냈다. 제국은 보편 정치 질서를 내세워 수 많은 나라들을 역사 뒤편으로 밀어냈다. 종교는 만물에 정령이 있다는 애니미즘에서, 다신교, 이신교를 거쳐 일신교로 흡수되었지만, 일신론 안에는 인류가 거쳐 온 종교적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본주의, 인본주의 심지어 공산주의도 하나의 종교로 볼 수 있다.


6. 두 번째 밀레니엄 한 가운데에서 시작된 과학혁명


기원 후 1500년 동안 이슬람, 기독교, 불교, 유교는 중요한 것은 다 알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답을 주지 못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과학은 달랐다.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했고, ‘수학’의 언어로 사고하였으며 새롭게 얻어진 지식은 새로운 기술에 개발되었다. 기원 후 1500년 동안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던 인류는, 1522년 지구를 일주하고 (마젤란의 항해), 1674년 미생물을 처음 보고 (안톤 판 레이우엔훅), 1969년 달에 도착했다. 새로운 기술과 나아지는 삶은 진정한 진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하지만 과학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없었다. 과학과 제국주의와의 결합은 식민지 시대의 바탕을 만들었고, 탐험과 정복의 야망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1492년 아즈텍 제국(오늘날의 멕시코)이, 1532년 잉카 제국 (오늘날의 칠레)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본주의는 과학과 제국주의의 결합에 강력한 연료였다. 성장에 대한 신뢰를 먹는 자본주의는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도왔고,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정복, 영국의 인도 정복을 도왔다. 영국 정부는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영국의 마약 업자들이 중국에 아편을 팔게 도왔고, 과학의 힘에 패배한 중국인들은 아편 전쟁 이후 19세기 말 인구의 10%가 (4천 만명) 마약 중독자 신세로 전락하는 걸 바라봐야 했다.


7. 자본주의는 완전하지 않으며, 심지어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저자는 극단적인 자유시장 신봉주의가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는 믿음만큼이나 순진하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은 도둑과 사기꾼들에게 늘 위협당하고 있으며, 시장은 스스로를 이 위협에서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삐 풀린 시장의 힘은 대서양에 노예 무역을 번성케 했고, 16~19세기에 천만명이 넘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끌려가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벵골인 천만 명을 굶어 죽게 했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인도네시아를 지배했고, 벨기에의 레오폴드는 콩고 인구의 20%이 이상인 6백만명을 죽였다. 유럽 열강 중 자본의 맛을 늦게 깨달은 벨기에는 콩고의 ‘노예’들이 고무 생산 할당량을 못 채우면 본보기로 팔을 잘랐다.


8. 인류가 진보한다는 믿음이,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될까?


내일이 오늘과 같다면, 즉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행복이 별게 아닐 수 있다. 수 만년 진화의 결과로 수렵 채집인의 마음으로 사는 우리는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주는 객관적 기준에 맞춰 행복을 판단했었다. 하지만, 과학 혁명, 산업혁명을 거쳐 내일은 나을 거라는 믿음이 퍼지면서, 행복이 ‘주관적’인 느낌이라는 가정이 퍼지기 시작했다. 행복은 쾌락적 감각일 수도 있고, 개인이 정하는 삶의 의미일 수도 있다. 행복을 ‘강요’받는 우리는, 어쩌면 행복이 뭔지도 몰랐던 우리 선배들보다 더 불행할 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일 주일 내내 정말 행복했다. 내 시각을 넓혀준 저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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