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천일수련 천일째 날을 맞았다.
“인생에서 독기 품고 매진해볼 시간은 기껏해야 10년이다!!”
이 문장을 책상 옆 벽에 붙여놓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땀으로 목욕하며 산을 오른 지 천일이 지났다. 울기도 참 많이 울었고, 매일 땀범벅으로 산을 오르내렸다.
이 정도면 산 타는 건 날다람쥐처럼 날아다닐 수 있어야 하는데.
어제 999일차에 천왕봉 등정을 하고 내려오면서 깨달았다. 아직 한참 멀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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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날아다니듯 하루에 세 번씩이나 뛰어 내려오는 사람의 영상을 봤다. 나도 천왕봉 등정을 도전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천왕봉 등정을 계획했을 때는 999일차 등정이라는 의미와 천일수련의 화룡점정을 장식하는 뭔가 완성되고 성숙한 노련미와 원숙미가 풍겨나오는 여유롭고 폼 나는 등정이 될 거라는 그림을 그렸다.
오르기 전부터 들뜬 기분으로 핸드폰 녹화를 시작했다. 온갖 이정표들을 찍어가며, 마치 라이브 방송하듯 이것저것 녹화하며 올라갔다. 999일차의 특별한 순간을, 지리산 마고할머니 성모상 앞에서의 기도를, 천왕봉으로 향하는 그 감격의 순간들을 모두 담고 싶었다.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오를 수 있었다. 천일 동안 단련한 몸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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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정상에 도착해서 보니 배터리는 이미 다 소진된 상태였다.
천왕봉 정상에서의 기념 촬영을 다양하게 해서 책에도 멋지게 수록할 계획이었는데, 정상에서의 촬영과 라이브 방송은 무산돼버렸다. 등산객 한 분에게 사정해서 겨우 두 컷의 기념 촬영을 남겼다.
황당했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내려가는 길에서 더 큰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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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이 문제였다. 무릎 연골에 부담이 오는 게 팍팍 느껴졌다. 조심히 내려오느라 엉금엉금 기듯이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나를 앞질러 휙휙, 쌩쌩하게 내려가는 많은 사람들을 봤다.
‘무림의 세계는 넓고 고수는 많구나.’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씁쓸해하며 내려가던 중, 젊은 부부와 엄마로 보이는 사람들이 앞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부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엉금엉금 기듯이 거북이 걸음으로 부축받다시피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동병상련 같은 위안을 느끼며 그 일행들과 템포를 맞춰 내려갔다.
부인이 나를 보며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먼저 내려가세요.”
나는 대답했다.
“같은 처지라 제 신경 쓰지 마세요.”
빵 터지며 일행들이 웃었다.
나는 그 일행을 뒤로하고 천천히 내려왔다. 천일간 매일 산을 올랐는데 이 모양이네 하는 자괴감보다, 내 몸을 지키며 안전하게 내려오는 게 최고다 하는 위안감으로.
다 내려와서 보니 무리한 하산길에 무릎에 이상이 생긴 한 등산객이 안내소에서 스프레이 파스를 빌려 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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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피로감과 시장기가 몰려왔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미친 듯이 시장기를 자극했지만, 더 늦어지면 버스 타기도 힘들어질 것 같아 시장기를 참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느라 40분 동안 앉아 있는데, 내려오면서 흘깃 마주친 두 명의 남성들이 버스 대기소로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나는 핸드폰이 꺼진 상태라 충전 중이어서 대기소를 떠날 수가 없었다. 반강제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들은 서울에서 새벽 3시에 도착해서 시작 전부터 의욕 넘치게 파이팅 외치며 한잔 걸치고, 늦게 등반을 시작해서 정작 천왕봉까지는 오르지도 못하고 포기하고 다시 내려와 또 한잔 걸치고, 그러다가 버스를 놓치고 또 한잔하고, 내려와 보니 또 버스는 떠났고, 또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그러다가 나에게 물었다.
“지리산 종주 마치고 올라가시나 봐요?”
나는 말을 섞는 게 왠지 꺼림직해서 간단하게만 답변하고 다시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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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길게 느껴졌던 40분의 대기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버스를 타고 다시 마천에 도착했다. 그런데 또다시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택시를 타면 20분이면 집에 도착할 텐데, 18,000원의 택시비를 아끼느라 버스비 2,700원으로 두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마트에서 기다리며 필요도 없는 것들을 사느라 4만 원 가까이 썼다.
‘내 시간 두 시간이 15,000원보다 저렴한 거구나.’
실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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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자마자 씻지도 않고 삼겹살을 냉동실에서 꺼내서 해동도 안 한 채로 바로 꽁꽁 언 고기를 후라이팬에 굽기 시작했다. 통마늘도 씻지도 않고 바로 후라이팬에 부어 넣었다.
꽁꽁 언 고기는 좀처럼 구워지지 않았다. 미련한 긴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고기가 구워졌다.
이렇게 먹은 삼겹살은 이제껏 먹은 삼겹살의 어떤 고기보다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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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씹으며 문득 생각했다.
들뜬 기분으로 녹화를 시작했지만 정작 정상에서 배터리가 나가버린 나.
의욕 넘치게 파이팅 외치며 한잔했지만 정작 천왕봉까지 오르지 못하고 돌아간 버스 정류장의 그 사람들.
우리는 다르지 않았다.
계획은 완벽했지만 현실은 엉성했다. 의욕은 넘쳤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생기니라.”**
실감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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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삶도 이와 같을 것이다.
천일수련이 끝난 이후의 삶이 뭔가 멋지고 완벽한 앞날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으로 계획을 세워보겠지만, 정작 삶은 이런 식으로 엉성할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결코 반길 수 없는 인연들과 기대와 다른 컨디션의 난조가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엉금엉금 기듯 내려오면 그게 뭐 어때” 하는 생기의 응원과, 같은 처지를 느끼며 함께 길을 내려오는 도반 같은 느린 걸음이지만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길벗들과의 조우 속에 빵 터지는 실소 아닌 동병상련의 위로이자 위안을 느껴가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낼 것이 예견된다.
이게 내가 천일수련을 하며 어제 999일차 날에 천왕봉 등정을 통해 깨달은 천일의 마지막 날 에필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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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일기를 쓰며 수정하느라 고쳐본 적 없는 일기장에, 공교롭게 천일 종료 에필로그 마지막 문장을 수정하게 된다.
~천일의 마지막 날 - 에필로그(가) 이며 (천일이 마무리된다.)~
**천일의 마지막 날 - 에필로그이다.**
이것 또한 앞으로 펼쳐질 날들에 대한 암시가 담긴 거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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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5일 토요일**
**천일수련 마지막 날 1000일차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