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의 불편함

by 하봉길

완벽함의 불편함


우리는 왜 그들을 이해해주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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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연설, 그리고 미묘한 거북함


경주 APEC에서 울려 퍼진 RM의 기조연설을 들었다. UN 연설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고, 메시지는 정확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왠지 모를 거북함이 밀려왔다.


유재석에게서 느껴지던 그 불편함과 결이 비슷했다. 둘 다 각 분야에서 정점에 있고, 흠잡을 데 없이 단정하며, 사회에 모범이 되는 반듯한 모습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왜일까? 나만 느끼는 불편함일까?


개그맨이 ‘유느님’ 소리를 듣는다. 마치 종교 지도자처럼 흠 없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경규 표현대로라면 김수환 추기경처럼 사람들이 대한다고 했다.


BTS나 RM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아미들의 호응 속에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밝게 비추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흠잡을 데가 없다. 둘 다 그렇다.


이 불편함은 무엇인가?


내 속의 시기심 때문일까? 질투심 때문일까?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현상은 무엇인가? 왜 생기는 불편하다고 느끼는 걸까? 그들의 삶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불편하게 느껴질까?


시대의 필요와 흐름에 앞장서고 동원된 나팔수를 보는 느낌이랄까. 또는 완벽함 속에서 느껴지는 여유 없음 같은 아이러니한 모순감 때문일까?


자연은 날것 같고 불규칙적인 듯 하면서도, 그 속에서 살아내는 생명들의 조화 속에 어우러져 만드는 자연스러운 균형감이 바로 완벽한 자연의 모습이다.


그런데 RM이나 유재석은 뭔가 모르게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자기 통제와 관리로 굳어진 이미지를 보는 것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돈나의 추모 연설


또 한 편의 영상을 봤다.


마돈나가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는 추모 연설 장면이었다. 마돈나는 마이클 잭슨과의 개인적 교감을 이야기하며, 그와의 인간적 교감에 대한 이야기로 담담히 그를 추억했다.


마돈나가 말했다.


“우리는 왜 그를 이해해주지 못했을까?”


“그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못했을까?”


“그는 인간이었고, 우리 곁의 누구와도 다를 바 없는 친구였다. 그는 팝의 진정한 왕이었다. 그 두 모습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왜 받아주지 못했을까?”


내 식대로 해석한 마돈나의 회한을 적어본다.


동물원의 맹수


정말 위대한 아티스트이자 팝의 진정한 왕으로, 누구도 이견이 없는 소중한 인류의 친구를 우리는 이해해주지 못하고 결국 떠나보냈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 모차르트, 고흐.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큰 울림을 준 인물들을 보면, 인류는 그들을 숭배하거나 기대에 가둬놓고 마치 동물원의 맹수를 구경하듯 틀 속에서만 지내도록 먹을 것을 던져준다.


최상의 환경이라고 자부하며 잘해주고 있다고 착각한다.


스타들이나 대중들이나 둘 다 그 착각 속에서 던져주는 먹을 것을 받아먹으며 조련당하면서도, 조련당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기대에 못 미치면 맹비난을 퍼붓고 버리듯 강제 퇴출시켜 버린다. 길들여지고 사육된 맹수는 더 이상 자연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없음에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린다.


진짜 자유를 향하여


이런 동물원 풍경과도 같은 인위적인 모습들을.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기답게, 아름답게, 저마다의 모습으로 마음껏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연의 완전함이고 조화로움임을 인간들이 깨닫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매 순간 순간 맹렬히 생기로 공명하며 만끽하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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