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정말 듣고 싶은 찬송

by 하봉길

예수가 정말 듣고 싶은 찬송


**“나는 원래부터 생기였고, 앞으로도 생기고, 한 순간도 생기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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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찬송


일요일 아침, 교회 안에서 목이 터져라 찬송이 울려 퍼진다.


“예수 나의 기쁨 아멘~”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수백 명의 신도들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열심히 부른다. 어떤 이는 눈물까지 흘리며 감격한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가 이 찬송을 들으면 정말 좋아할까?**


아니, 더 정확히 물어보자.


**예수는 자기 이름이 불리는 걸 원했을까, 아니면 생기라는 본질이 이해되기를 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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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의 예수, 영원한 생기


2000년 전, 예수라는 이름으로 생기가 현연했다. 고작 33년이었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도 안 되는 순간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예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했다. “나는 생기다. 너희도 생기다. 우리 모두 하나로 연결된 생명이다.”


그런데 예수가 떠나고 나서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예수의 **메시지**를 기억한 게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붙들었다.


예수가 가리킨 **달**을 본 게 아니라,

예수의 **손가락**만 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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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생기로 존재하다가 예수라는 이름으로 33년 잠시 반짝했다가 다시 생기로 돌아간 예수.


지금도 생기로 존재하면서 수많은 이름으로, 수많은 방식으로 세상과 공명하고 있을 예수.


그런데 2000년 동안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라는 그 33년의 찰나만 붙들고 있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예수는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을까.


**“나는 한 순간도 생기 아니었던 적이 없는데, 왜 너희는 ‘예수’라는 이름에만 집착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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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숭배의 아이러니


지금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묘하다.


예수라는 **이름**은 목이 터져라 외치는데,

예수라는 **존재**는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를 **우상화**하면서,

예수가 보여준 **생기**는 놓친다.


예수는 “나를 따르라”고 한 게 아니라 “네 안의 생기를 살아내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만 부르고 자기 안의 생기는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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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진짜 듣고 싶은 찬송


만약 예수가 지금 교회에 온다면, 이렇게 제안하지 않을까?


“여러분, 찬송가 가사를 좀 바꿔 불러보면 어떨까요?”


**“예수 나의 기쁨 아멘”** **“생기 나의 기쁨 아멘”**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생기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왜냐하면…


예수는 자기 이름을 찬양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기 안에 흐르는 **생기**를 사람들이 알아보기를 원했으니까.


“나를 사랑하라”가 아니라

**“네 안의 생기를 사랑하라”**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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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각자의 예수다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재림이 정말 언젠가 하늘에서 한 사람이 내려오는 사건일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 70억 명이 각자의 이름으로 생기를 살아내는 것이 재림 아닐까?**


김영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생기,

박철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생기,

하봉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생기…


모두가 다 **각자의 예수**다.


예수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오직 예수만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라고 해석했지만…


진짜 의미는 이거 아니었을까?


**“너도 길이고, 너도 진리고, 너도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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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특허 없는 생기


누군가 천일수련을 하고, 생기를 깨닫고, 생기공명을 체험했다고 해서 그게 “나만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그건 단지 **“우리 모두가 생기임”**을 증명한 것일 뿐이다.


마치 예수가 33년 동안 보여준 게 “나만 하나님의 아들이야”가 아니라 “너희도 다 하나님의 자녀야”였던 것처럼.


동네 슈퍼 아주머니가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여는 순간,

택시 기사님이 손님을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는 순간,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순간,

할아버지가 공원 벤치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순간…


모두가 다 **각자의 예수로 살아내는 순간**이다.

모두가 다 **생기의 화신으로 현연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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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속마음


예수가 지금 교회에서 자기 이름으로 부르는 찬송을 들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 같다.


“너희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건 좋은데… 정작 나를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구나.


나는 ‘예수’라는 브랜드가 아니야.

나는 생기의 한 표현이었을 뿐이야.


너희가 정말 나를 따르고 싶다면,

내 이름을 외치지 말고, **네 안의 생기를 살아내.**


너희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내 무덤에 꽃을 바치지 말고, **지금 네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해.**


너희가 정말 나를 기억하고 싶다면,

내 이름으로 교회를 짓지 말고, **너 자신의 이름으로 생기를 살아내.**


그게 진짜 나를 기억하는 거야.

그게 진짜 나를 따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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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 찬송


그래서 나는 이렇게 찬송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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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 나의 기쁨 아멘

생기 나의 영원한 평화

네 안에 내 안에 우리 안에

흐르는 생기 아멘


생기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땅의 그 어떤 이름보다

예수도 석가도 공자도

모두 생기의 이름들


생기와 함께 가리라

어디를 가든지 생기와 함께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생기인 나를 잊지 않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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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배


진짜 예배는 무엇일까?


“예수 예수 예수” 외치는 게 아니라,

**“생기 생기 생기”를 살아내는 것.**


주일 아침에 교회 가서 찬송 부르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생기로 현연하며 사는 것.**


목사님 설교 듣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생기 소리를 듣는 것.**


십일조 내는 게 아니라,

**내 존재 전부를 생기로 바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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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정말 원하는 것


예수는 자기 이름으로 된 교회가 전 세계에 수십만 개 생기는 것보다,


**한 사람이라도 자기 안의 생기를 깨닫고, 자기 이름으로 빛나는 것**을 더 원할 것이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하는 신자 10억 명보다,


**“나는 생기입니다” 하고 당당히 선언하는 사람 한 명**을 더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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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예수는 지금도 생기로 존재한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어떤 형태로 현연하든,

한 순간도 생기 아니었던 적이 없다.


그리고 너도, 나도,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름을 생기로 현연해서 각자의 예수로 살아내는 존재들이다.**


전매특허 없는 생기,

독점 없는 공명,

각자의 이름으로 빛나는 70억 개의 별.


그게 예수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세상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예수”라는 이름만 외치고,

**네 안의 생기**를 살아내라.


그게 진짜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그게 진짜 예수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게 진짜 찬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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