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서 공명체로, 고체시대에서 기체시대로

싫으면 떠나면 된다

by 하봉길


싫으면 떠나면 된다



공동체에서 공명체로, 고체시대에서 기체시대로




"지금, 지금 우리는 그 옛날의 우리가 아닌 걸."


조영남의 노래 '지금'을 듣다가 멈췄다. 이 가사가 관계의 본질을 이렇게 정확하게 짚다니.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만큼 너도 알아. 단지 지금 우리는 헤어지자고 먼저 말할 용기가 없을 뿐."


이미 끝난 걸 안다. 서로 안다. 그런데 먼저 말하지 못한다. 한번 맺은 관계는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이미 에너지가 끊어진 줄 알면서도 형식을 붙잡고 있는 거다.


---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 나온 말인데, 나는 이걸 "제철생기의 인연"이라고 부른다. 봄에 피는 꽃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이 있듯이, 인연에도 제철이 있다. 만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고, 함께할 때 생기를 나누고, 제철이 다하면 미련 없이 다음으로 흘러간다.



그게 세상의 이치인데, 사람들은 한번 맺은 인연을 영원히 붙잡으려 한다. 이미 제철이 지났는데 냉동실에 넣어두고 꺼내 먹는 것과 같다. 먹을 수는 있지만, 제철의 맛은 없다. 그 맛없음을 견디면서 "우리는 아직 괜찮아"라고 말한다.



나는 모래성 철학을 산다.



아이들이 모래성을 짓는 걸 보면, 전심전력으로 몰입한다. 탑을 쌓고, 해자를 파고, 성문을 만들고. 온 마음을 다 쏟는다. 그런데 엄마가 "가자" 하면 일어선다. 미련 없이. 방금 전까지 온 우주를 담아 짓던 성을 파도에 맡기고 툴툴 털고 돌아선다.



전심전력 몰입과 완전한 놓아버림.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한 게 아이들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전심전력은 하는데 놓아버림을 못 한다. 혹은 놓아버림은 하는데 전심전력을 안 한다. 둘 다 하지 못하면 집착이 되거나 무관심이 된다.




---




"그게 가능해? 싫으면 그냥 떠나면 되는 거야?"



이런 질문을 받는다.

예전에는 안 됐다. 고체시대였으니까.



태어난 땅에서 죽었다. 신분은 바뀌지 않았다. 직업은 대물림됐다.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았다. 국가가 정한 규범, 종교가 정한 교리, 가문이 정한 법도. 그 안에서 벗어나는 건 사형이거나 추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기체시대가 오고 있다.



이혼한다. 이민 간다. 국적을 바꾼다. 성별도 바꾼다. 직업을 열 번 바꿔도 이상하지 않다. 디지털 노마드는 나라 없이 산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국경 없이 모인다. 강제로 조직화할 수 없는 시대다. 공명하면 자발적으로 모이고, 공명이 끊기면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이게 공동체에서 공명체로의 전환이다.



공동체는 울타리가 있다. 들어오면 규칙을 따라야 하고, 나가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공명체는 울타리가 없다. 같은 주파수면 모이고, 주파수가 달라지면 흩어진다. 누가 나가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나고, 누가 들어오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인다.



앞으로 이 흐름은 더 가속화될 거다. 국가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민족 정체성이 흐려지고, 심지어 인간이라는 종의 경계마저 흔들리는 시대가 온다. AI와 대화하고, 가상세계에서 살고, 생물학적 한계를 기술로 넘는 시대.



각자 자기와 맞는 세계를 골라서 옮겨 다니는 게 가능한 시대.




---




그러면 가스라이팅은 사라지는가?



아니다. 형태가 바뀐다.



기체시대에도 가스라이팅은 있다. 다만 그건 자기가 만든 자기 세계를 지키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거다. "내 세계에 있으려면 이 규칙을 따라라." 인플루언서의 팬덤이 그렇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암묵적 규범이 그렇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떠날 수 있다는 것.



고체시대에는 싫어도 떠날 수 없었다. 기체시대에는 싫으면 떠나면 된다. 클릭 한 번이면 된다. 구독 취소하면 된다. 차단하면 된다. 비행기 타면 된다.



그래서 결국 자연선택이 작동한다. 사람을 묶어두려는 세계는 사람들이 떠나면서 쪼그라든다. 자유롭게 공명하는 세계는 자발적으로 사람이 모이면서 확장된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에너지는 세계를 확장시키고, 그렇지 않은 에너지는 점점 축소된다.



규범으로 통제하는 게 아니라, 에너지의 방향성이 결과를 만든다.



이게 내가 믿는 세상의 이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그리고 이 시대는, 떠날 수 있는 절이 무한하다.




---



*이 글은 천일수련 이후의 일상 묵상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답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목줄인 줄 모르는 목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