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시대에서 기체시대로 가는 여정
오늘도 거울 속의 내 눈은 퀭하다. 며칠째 컴퓨터 앞에 앉아 원고를 퇴고하느라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이다. 문득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스치지만, 이내 그 퀭한 눈조차 지금 내 삶의 정직한 기록임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나를 '감독'이라 부르고, 때로는 삶의 길을 묻는 '영성가'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저 매 순간 흔들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사는 한 사람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이 흔들리고 더 자주 아파하며, 그 과정을 투명하게 내보이는 것이 나의 유일한 역할이라 믿는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계획하고 목표를 세운다. 하지만 삶은 결코 우리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외부의 영향으로 일이 꼬이고 장벽에 부딪힐 때, 예전의 나는 좌절하고 자책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방식대로 풀리지 않을 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다른 길'의 시작임을.
나에게는 늘 '12가지 방법'이 남아있다. 돈이 없어도 숨은 쉴 수 있고, 사람이 없어도 기획은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몸 하나로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어느새 환경은 무르익고 꽃은 피어난다.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대개 '불완전 연소'된 과거의 기억들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 누군가를 향한 분노... 이런 것들이 뇌의 작업 기억(RAM)을 차지하고 있으면 우리는 결코 가벼워질 수 없다.
나는 이 찌꺼기들을 태우기 위해 '표현'을 선택한다. 혼잣말로 궁시렁거리든, 일기에 쏟아내든,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뇌는 그 사건을 '종결'된 것으로 인식한다. 5분만 온전히 그 감정을 만끽하고 내뱉어보라. 끈적끈적한 탁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맑은 생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몸이라는 디바이스를 쓰는 '유저'다
나는 나를 '인간'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기로 했다. 이 몸은 우주가 빌려준 정교한 '디바이스'이고, 본질적인 나는 그것을 경험하고 즐기는 '유저'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 단단하게 뭉쳐 싸우던 '고체 시대'를 지나, 서로 공명하고 흐르는 '기체 시대'를 살고 있다. 더 이상 완벽한 척, 강한 척할 필요가 없다. 내가 나의 흔들림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 그 주파수는 누군가의 아픔과 만나 거대한 '공명'을 일으킨다.
흔들림, 그 자체가 생기다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솔직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웃으며 답할 것이다. "흔들리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나는 오늘도 기꺼이 흔들린다. 나의 평범함이, 나의 흔들림이 누군가에게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위로가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행복하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며, 서로의 생기를 확인하는 아름다운 공명체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