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끝까지 나를 살아냈다

공동체의 시대에서 공명체의 시대로

by 하봉길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겨울날,

나는 지리산 어딘가에 서 있었다.

바람이 이파리 없는 나무를 흔들고,

내 마음도 함께 흔들리던 그 순간.


_"왜 계속 해야 하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데..."_


목소리가 백철쭉 꽃잎처럼 하얗게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나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은 오직 침묵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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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인정받기 위해' 달려왔다.

누군가 칭찬해주면 온몸에 도파민이 샘솟고,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으로 살았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열정으로 질주하다가도

반응이 없으면 머리를 싸매고 한없이 내려앉았다.

내가 쏟은 에너지만큼 결과물이 없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실패자라 여겼다.


25명의 관객을 위해 14억을 쏟아부은 콘서트.

엄동설한에 꽃 한 송이 피우겠다고 발버둥 친 순간들.

수많은 빚과 소송, 비난과 조롱 속에서도

나는 언제나 "기필코 해내겠다"며 달려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만들려 했던 것은 '공동체'였다.

사람들이 모여 북적이는, 단단한 형태의 조직.

내 노력의 결실로 눈에 보이는 성취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 본질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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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어느 날, 나는 핑크빛 조명이 비치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한 구독자님의 질문에 맹렬히 떨리기 시작했다.


_"그렇게 하는 행위조차도 무언가가 방해하는 듯한 느낌을 드실 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_


그 질문이 내 영혼을 툭 건드렸다.

마치 누군가 내 마음속 가장 깊은 의문을 대신 꺼내준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딜레마가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줄곧 '공동체'를 만들려 했지만, 내 본질은 '공명체'였던 것이다.


고체 시대에서 기체 시대로.

구조화된 세계에서 에너지로 춤추는 세계로.

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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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매 순간 맹렬히 떨리는 존재다.

결과물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그 순간의 진실한 떨림만을 소중히 여기는 방식.


어린 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찬물에 설거지를 하던 어린 길이.

누나들이 "우리 길이는 설거지도 잘하지"라고 칭찬하면

신이 나서 손이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바닥바닥 그릇을 닦던 그 순간.


그 순간이 살아있었던 건, 내가 온 마음을 다해 그 일에 담겼기 때문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가 생명력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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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인생에서 진정 기억에 남는 것은

긴 시간이 아니라 짧지만 강렬한 순간들이다.


한 번의 눈빛 교환.

한 마디의 진심 어린 말.

한 순간의 꽃처럼 피어났다 사라지는 만남.


이런 순간들이 우리 존재의 본질에 더 가깝다.

그래서 예수는 3년의 짧은 공생애만으로도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있다.

그는 결과물이 아닌, 순간의 맹렬한 떨림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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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은 구조가 아니라 떨림이라는 것을.

눈에 보이는 성취가 아니라,

심장이 진실로 뛰는 그 순간의 공명이라는 것을.


오늘 아침, 나는 다시 지리산에 올랐다.

징징대며 추위에 떨면서도,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속삭였다.


_"아이고, 우리 길이 오늘도 잘하네. 너무 예쁘네."_


그 칭찬 한 마디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철쭉꽃을 잘 모르던 내가 이제는 백철쭉과 붉은 철쭉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산에 피어난 고사리가 약초와 같은 가치를 지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끝까지 나를 살아내고 있었다.

단단한 공동체를 꿈꾸던 존재에서,

맹렬히 떨리는 공명체로 전환하여.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고,

매 순간 내 심장의 떨림에 온전히 집중하며.


그래, 이것이 나의 존재 방식이다.

공동체의 법칙이 아닌,

공명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것.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공명체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심장에

무수한 떨림으로 살아간다.


나는 끝까지 나를 살아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맹렬히 떨리며.

온전히 공명하며.

끝까지 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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