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스님과 나, 그리고 무애행

by 하봉길

휴대폰 스님과 나, 그리고 무애행

매일 오르는 산길이 있다. 5.2킬로미터.

새벽 공기를 마시며 오르는 그 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스님이 한 분 계신다. 특이하게도 그분은 늘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하고 계신다. 산 정상에서도, 오르막길에서도, 항상 휴대폰을 귀에 대고 계신다.

'산에까지 와서 휴대폰이라니...'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내 주머니 속 보관중인 휴대폰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다르다고. 나는 온전히 산과 교감하며 오른다고.

오늘도 정상에 도착하니 그 스님이 계셨다. 역시나 통화 중이셨다. 평소엔 그늘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데, 오늘은 그분이 내가 좋아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계셨다.

"좀 쉬었다 가세요."

스님의 인사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마치 무언가 더러운 것을 피하듯이.

하산길에서 문득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왜 나는 도망쳤을까? 무엇이 그리 꺼려졌을까?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의식으로 공명하는 동생과 밤새 술잔을 기울였다. 깊어가는 대화 속에서 동생이 문득 인도의 한 신 이야기를 꺼냈다.

"형, 크리슈나라는 신을 아세요? 그는 선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존재를 사랑으로 품은 신이거든요."

그 말이 가슴에 꽂혔다.

돌아보니 내 주변엔 늘 '특별한' 사람들이 많았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소위 '양아치'라 불리는 이들. 나는 선한 영향력을 꿈꾸면서도 유난히 그런 이들이 내 주변에 꼬였다. 누군가는 나를 "예수님 같다"고 했다. 죄인들의 친구, 예수.

그런데 정작 나는 어땠나?

그들 중 누군가에게는 대놓고 면전에서 "마귀"라 부르기도 했다. 마치 '나는 너희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선을 긋듯이.

산에서 만난 '휴대폰 스님' 한 분도 제대로 품지 못하면서.

하산하며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아니,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산을 내려오는 내내 열심히 휴대폰에 무언가를 입력했다.

'어라? 나도 지금...'

웃음이 났다. 방금 전 판단했던 그 스님과 내가 뭐가 다른가?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중요한 건 휴대폰을 드느냐 마느냐가 아니라는 것을. 산에서 묵상하든, 통화하든, 기록하든, 그 모든 것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무애행(無碍行).

원효대사가 말씀하신 '거침없이 나아가는 길'. 그것은 단순히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선악, 정결과 부정, 디지털과 아날로그... 그 모든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오가며, 만나는 모든 것을 편견 없이 품어 안는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홀로 산에 올라 기도하던 소년. "제발 적그리스도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그 소년은 왜 그토록 두려워했을까?

평생 나는 '사이비 교주'가 되지 않겠다며 내 안의 가능성들을 스스로 가두어왔다. 남들이 인정하는 '좋은 사람'의 틀 안에 나를 가두려 애썼다.

하지만 진정한 나를 산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양아치도, 성자도, 휴대폰 스님도, 묵상하는 나도, 모두가 이 거대한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정상에서 그 스님을 만나면 이제는 피하지 않고 옆에 앉아 쉬어갈 것이다. 그분은 통화를 하고, 나는 묵상을 하거나 휴대폰에 무언가를 기록하겠지.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같은 산 정상에서 나란히 숨을 고르는 것.

그것이 무애행의 시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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