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오르내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하던 어느 날이었다.
산길을 걷다 보면 온갖 벌레들과 마주친다. 개미, 메뚜기, 각종 곤충들이 발 아래를 지나간다. 때로는 지팡이에 맞기도 하고, 때로는 발에 밟히기도 한다.
그날도 나무 계단을 오르는데 개미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피해서 디딜 수도 있었지만, 발을 헛디디면 미끄러질 수 있는 상황. 그냥 밟고 지나갔다.
'아, 개미가 죽었겠구나.'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계속 올라갔다. 그런데 어느 날, 똑같은 상황에서 궁금증이 생겼다. 정말 개미가 죽었을까?
돌아보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등산화 밑창을 자세히 보면 홈이 파여 있다. 개미들은 너무 작아서 그 홈 사이로 빠져나간다. 밟혔다고 생각한 개미들은 사실 아무렇지 않게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그 순간 섬뜩한 깨달음이 왔다.
'내가 뒤돌아보지 않았다면?'
확인하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개미를 밟아 죽였다고 기억했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그것이 '사실'로 남았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실'을 만들어낸다.
- "그 사람이 나를 무시했어"
- "내가 실수해서 일을 망쳤어"
- "오늘은 운이 없는 날이야"
- "다들 나를 이상하게 봐"
정말 그럴까? 확인해 봤는가?
대부분은 확인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믿고, 그것을 사실로 만들어 산다. 마치 내가 개미를 밟아 죽였다고 믿었던 것처럼.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아는가?
상자 안의 고양이는 관찰하기 전까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다. 관찰하는 순간 하나의 상태로 확정된다.
우리 일상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연락이 없다.
- 관찰 A: "바빠서 그런가 보다" → 이해하는 현실
- 관찰 B: "나한테 삐졌나?" → 불안한 현실
- 관찰 C: "무슨 일 있나?" → 걱정하는 현실
어떻게 관찰하느냐에 따라 현실이 만들어진다. 실제로 친구에게 확인하기 전까지, 이 모든 현실이 동시에 존재한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우리 뇌는 실제를 볼 수 없다. 뇌는 해골 안에 갇혀 있어서 바깥을 직접 보지 못한다. 오직 신경 신호를 해석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낼 뿐이다.
즉,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뇌가 '그럴 것이다'라고 추측한 영상이다.
그래서 같은 상황을 겪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각자의 뇌가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한 연극 연출가의 일화가 있다.
공연 중 백스테이지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가서 확인하지 않았지만, 경험상 그럴 것 같았다. 그 확신을 가지고 스태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 분장실에서 문제 생겼지? 빨리 가서 확인해봐."
놀랍게도 정말 문제가 있었다.
이것은 예지력일까, 경험일까? 아니면 그의 확신이 현실을 만든 것일까?
충격적이지만 사실이다.
내 우주에서 나는 모든 것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
- 누군가를 미워하면, 내 세상에서 그는 악인이 된다
- 누군가를 사랑하면, 내 세상에서 그는 천사가 된다
- 누군가를 잊으면, 내 세상에서 그는 사라진다
마치 영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재처럼.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저를 거지 새끼라고 생각하셨어요. 저는 들었어요."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거니?"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의 소리는 다 들려요."
우리도 매일 이렇게 산다. 확인하지 않은 채로 타인의 마음을 '안다고' 믿고, 그것을 진실로 만들어 산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1. 의심하라**
"정말 그럴까?"라고 물어보는 습관을 들이자. 내가 만든 스토리가 아닌지 점검하자.
**2. 확인하라**
가능하다면 직접 확인하자. 놀랄 만큼 많은 오해가 풀린다.
**3. 그러나 확인하지 마라**
역설적이지만, 때로는 확인하지 않는 것이 낫다. 긍정적으로 믿고 있다면, 굳이 확인해서 환상을 깨뜨릴 필요는 없다.
## 현실을 선택할 자유
개미 이야기로 돌아가자.
만약 내가 계속 "개미를 밟아 죽였다"고 믿고 살았다면? 그것도 하나의 현실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현실.
확인해서 "개미가 살았다"는 것을 안 지금? 이것도 하나의 현실이다. 안도하는 현실.
둘 다 '나의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안다.
관찰하지 않은 것은 확정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현실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왜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
- 연락 없는 친구 → "뭔가 좋은 일이 있나보다"
- 실패한 시도 → "귀중한 경험을 얻었다"
- 힘든 하루 →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현실 창조다.
지금 당신이 믿고 있는 '사실'들을 한번 점검해보자.
- 정말 확인된 사실인가?
- 아니면 당신이 만든 스토리인가?
- 그 스토리는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가?
만약 불행하게 한다면, 다시 관찰해보라.
다른 각도에서, 다른 마음으로.
그러면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질 것이다.
개미는 살아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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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 순간 현실을 창조한다. 관찰하는 순간, 무한한 가능성 중 하나가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