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by 하봉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양자역학과 사주명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거장이 던진 마지막 질문


2023년, 82세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예고편도 스토리 공개도 없이 영화를 개봉했다. "직접 극장에서 보라." 이 짧은 메시지가 전부였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은 1937년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에서 가져왔지만, 영화 내용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2세 소년 마이토. 시골 저택으로 이사간 그는 말하는 푸른 왜가리를 만난다. "네 어머니가 살아있다." 왜가리를 따라간 곳에는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하고, 과거와 현재가 뒤엉키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이웃집 토토로의 순수함이 있고, 센과 치히로의 모험이 숨쉬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판타지가 살아있다. 미야자키가 평생 던져온 질문들이 한 편의 영화에 모두 녹아들었다. 죽음과 상실, 성장과 선택, 그리고 우리가 남기고 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상실과 고통을 겪은 후에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내는 용기." 영화가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정해진 운명을 따를 것인가, 자유 의지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 것인가. 창조주처럼 주도적으로 살 것인가, 기존 방식대로 흘러갈 것인가.


양자역학이 밝혀낸 선택의 비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삶의 목적을 모른 채 산다. 환경이 이끄는 대로, 순간의 선택에 떠밀려 표류한다. 그러다 문득 묻는다. 내 삶은 이미 정해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닐스 보어에게 던진 이 말은 20세기 물리학 최대의 논쟁을 촉발시켰다. 아인슈타인에게 우주는 거대한 시계였다. 모든 톱니바퀴가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세계.


그런데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모든 게 뒤집혔다. 관측하는 순간 결과가 결정된다니. 더 충격적인 건 '양자 지우개 효과'였다. 관측 전의 인과관계가 관측 순간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진다. 과거마저도 현재의 관측으로 재편성된다는 뜻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 순간의 선택이 현실을 만든다. 양자가 관측되는 순간 파동에서 입자로 변하듯, 우리 인생도 선택하는 순간 하나의 현실로 굳어진다.


"내가 어떤 관점으로 정하느냐에 따라 세계가 수렴된다." 철학적 은유가 아니라 양자역학이 증명한 사실이다. 종교가 말하는 신의 섭리, 과학이 말하는 인과율, 철학이 말하는 자유. 양자역학은 이 모든 게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해진 듯 보이는 운명도 우리의 관측과 선택으로 매 순간 새로 태어난다.


사주명리학, 진동의 과학


"만물은 고유한 진동과 주기를 가진다." 사주명리학은 여기서 시작한다.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오행, 자축인묘(子丑寅卯)로 시작하는 12지. 각각은 우주의 특정 에너지와 진동을 담고 있다. 천간지지가 만들어내는 60개 조합은 60가지 고유한 진동 패턴이다.


수천 년간 자연의 주기와 진동을 관찰하고 기록한 결과물이 주역이고 사주명리다. 점술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정확하다. 자녀의 수, 성격, 인생의 굴곡이 사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연이 아니라 자연법칙을 읽어내는 체계적 방법론이다.


그런데 함정이 있다. "내 사주가 이런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며 운명론의 늪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눈으로 보면 다르다. 진동이 바뀌면 운명도 바뀐다. 같은 사주를 가진 쌍둥이도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관찰자의 관점과 진동이 삶을 결정한다. 현대 과학과 고대 지혜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사주는 운명의 감옥이 아니라 에너지의 지도다. 가능성을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AI 시대의 명리학 활용법


AI가 명리학의 문턱을 확 낮췄다. ChatGPT와 대화하듯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게 됐다. 자기 사주를 직접 풀어보고, 용어 하나하나를 익혀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전엔 평생 공부해도 어려웠던 게 이제는 기초만 알아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자기 사주부터 시작하는 게 효과적이다. 오행이 어떻게 상생상극하는지, 천간지지가 어떤 관계인지, 대운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내 사례로 이해하면 학습 속도가 빨라진다. 가족이나 친구 사주를 봐주면서 실전 감각을 익히는 것도 좋다.


해석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사주를 볼 때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쪽으로 읽어야 한다. 지혜에는 반드시 사랑과 긍휼이 섞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이 된다.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긍정의 에너지가 전달된다.


겨울을 지혜롭게 나는 법


인생이 힘들 때 사람들은 사주를 본다. 왜 이렇게 힘든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사주를 보고 더 절망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 내 팔자구나" 하며 부정적 확신의 덫에 걸린다.


겨울을 억지로 여름으로 바꿀 순 없다. 계절이 순환하듯 인생의 침체기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중요한 건 "겨울을 지혜롭게 나는 법"을 아는 것. 사주명리가 주는 진짜 지혜가 이것이다.


"장차 받을 영광에 비하면 지금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도 바울의 이 말에는 깊은 통찰이 숨어있다. 현재의 고통에 매몰되지 말고, 그것이 가져올 성장과 변화를 바라보라는 것.


전문가는 모든 실수를 다 해본 사람이다. 실패와 좌절 없이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 있겠나. 겨울을 모르는 사람이 봄의 소중함을 알 리 없다.


어려운 시기에는 미래에 대한 확신과 용기가 필요하다. 맹목적 낙관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는 지혜다. 겨울에는 겨울답게 사는 법이 있다. 휴식하고 성찰하며 내면을 충전한다. 다음 도약을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삼는다.


창조주로서의 자연스러운 삶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자. 선악을 구별하기 전 에덴동산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와 해탈의 상태였다. 자연을 보면 답이 나온다. 꽃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이 없고, 새는 노래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다. 그저 본성대로 살 뿐.


인간만 정답을 찾는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받으려 한다. 만약 신이 있다면 뭐라고 할까.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모든 경험은 완전하고, 잘못될 일은 없다."


창조주의 핵심 가치는 '널리 나누는 것'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하지만 이것도 의무나 당위가 아니다. 나비가 꽃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본성의 발현이다. 나비는 꿀을 빨면서 자연스럽게 꽃가루를 옮긴다.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세상에 이로움을 준다.


진심이 통할 때 왜곡되지 않은 자기장끼리 공명한다. 그때 우리는 진정한 기쁨을 느낀다. 도덕적 당위가 아니라 자연법칙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진심은 진심을 찾아 흐른다.


미완성의 아름다움과 정답 없는 용기


"미완성의 인생이면 어때?" 이 한마디가 주는 위안이 크다. 우리는 늘 완벽을 추구한다. 완성된 작품, 완벽한 인생, 흠 없는 성과. 하지만 미완성이야말로 인생의 본질 아닐까.


자연에서 완성을 찾아보자. 나무는 언제 완성되나? 죽는 순간까지도 자란다.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서도 끊임없이 흐른다. 완성은 어쩌면 죽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정답은 밖에 없다. 내 선택과 경험이 곧 정답이다. 양자 지우개 효과처럼, 내가 내린 결정과 관점이 내 세계를 만든다. 창조주로 산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매 순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며, 그것으로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


신에게 정답을 구하지 마라. 신은 정답 대신 선택의 자유를 준다. 그 선택이 옳든 그르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든 경험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미완성을 살아가는 용기, 그게 진정한 자유다.


자유 의지와 창조적 삶의 선택


결국 우리는 기로에 선다. 정해진 운명을 따를 것인가, 자유 의지로 창조적 삶을 살 것인가. 양자역학이 증명했다. 관측하는 순간 현실이 결정된다. 우리가 선택하는 순간, 그것이 우리 현실이 된다.


사주명리를 배우는 이유도 여기 있다. 운명을 알려는 게 아니라 운명을 창조하려는 것. 내 진동과 주기를 이해하고 지혜롭게 활용하려는 것. AI와 대화하며 배우는 명리학은 자기 발견의 도구가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묻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정답은 없다. 아니, 정답을 묻지 않는 게 정답일지도. 정답을 묻지 않는 용기, 내 선택을 믿는 용기, 미완성을 받아들이는 용기. 이게 진정한 자유 의지의 실천이다.


우리는 답한다. "정답을 묻지 않고, 매 순간 선택하며, 그 선택을 사랑하며 살겠다." 창조주로서,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품고. 양자역학과 사주명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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