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양자도약 시대,
운명은 고정되지 않는다

by 하봉길

디지털 양자도약 시대, 운명은 고정되지 않는다


고체에서 기체로, 운명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한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고체 시대, 액체 시대를 거쳐 이제 기체 시대로 진입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과거엔 태어난 동네에서 평생을 살았다. 환경에 종속된 채로, 계절이 바뀌면 몸이 따라가고, 마을의 리듬에 맞춰 살았다. 사주팔자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던 이유다. 태어난 순간의 우주 에너지가 평생 그 사람을 규정했고, 주변 환경과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예측 가능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는 태어난 곳을 떠나 자유롭게 이동한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 자연물보다 많아졌다. 기후는 혼란스럽고, 계절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더 놀라운 건 우리 몸의 경계마저 흐려졌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자동차, 각종 디바이스들이 우리 몸의 연장선이 되었다. SNS에서 활동하는 디지털 페르소나도 '나'의 일부다.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각각 다른 캐릭터로 살아간다. 물리적 몸 하나로 계산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내고 있다. 광물 유기체와 공진화하며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MG세대를 보라. 키도 크고 외모도 달라졌다. 종 자체가 변화할 정도의 진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년월일시만으로 운명을 점친다? 오차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입자적 존재로서 자기장을 바꾸는 법


그렇다면 운명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아니다. 다만 고정에서 유동으로, 결정에서 선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양자역학을 떠올려보자. 입자는 관측되는 순간 그 상태가 결정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만나는 순간, 어떤 역할을 하는 순간, 우리는 '입자적 존재'가 된다. 그 순간 내가 어떤 상태의 물질인지 알아차리는 것, 그게 지혜다.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상대와 공명하는 자기장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장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큰 실수를 한다. 상대를 바꾸려 한다는 것이다.


상대는 자연과 같다.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듯, 상대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에너지만 소진하고 실패를 맛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자기장을 조절하는 것이다. 상대의 주파수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내 진동을 조율한다.


"몸을 갈아입는 시대"라는 표현이 있다.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하고 있다. 친구 앞에서와 이성 앞에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나? 상사 앞과 부하 앞에서 다르지 않나? 메타버스에서 캐릭터를 바꾸듯, 우리는 매 순간 다른 자기장으로 변신한다.


문제는 "나는 변할 수 없어"라는 고정관념이다. 고체적 사고에 갇혀 있으면 기체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마음가짐을 바꾸는 순간, 자기장은 즉각 변한다. 태도가 바뀌면 에너지가 바뀌고, 공명하는 대상도 달라진다.


용변부동본, 변해도 변하지 않는 나


그런데 계속 변하기만 하면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을까?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이다. 쓰임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북극성을 생각해보자. 하늘의 모든 별이 움직여도 북극성은 제자리를 지킨다. 우리에게도 그런 중심이 필요하다. 어떤 캐릭터를 입고, 어떤 역할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본질적인 '나'.


이 중심이 확고하면 어떤 변화도 두렵지 않다. 좋은 대학, 결혼, 재물 같은 지엽적 목표에 매달리지 않는다. 성공해도 허무하지 않고,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는다. 삶의 모든 순간을 즐기고 포용할 수 있다.


슈퍼리치들이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의 본질적 가치를 알기에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다. 우주의 근원 에너지이자 불멸의 존재임을 아는 사람은 피해의식이나 자격지심이 없다.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눈을 맞출 수 있다.


지리산처럼 되는 것이다. 모든 다름을 품어 안는 넉넉함. 어떤 존재가 와도 거부하지 않고 포용하는 너그러움. 그게 용변부동본의 경지다.


장소의 진동을 읽고 바꾸는 법


사람만 자기장이 있는 게 아니다. 장소에도 고유한 진동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분위기'라고 부른다.


어떤 곳에 들어가면 즉시 느낀다. "여기 좋다" 또는 "여기 불편해". 이건 미신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몸이 감지하는 에너지다. 풍수지리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땅의 기운과 내 기운이 맞는지 파악하는 것.


맞지 않는 자기장에 오래 있으면 어떻게 될까? 진동이 왜곡되고 엉킨다. 몸에 탈이 나거나 정신적으로 지친다. 원자폭탄에 피폭되듯 엄청난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즉시 자리를 피한다. 분위기가 안 맞으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나온다. 5~10분 후 다시 들어가면 미세하게 진동이 바뀌어 괜찮아지는 경우도 많다.


둘째, 공간을 바꾼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이라도 당장은 내 공간이다. 좋아하는 물건을 배치하고, 동선을 바꾸고, 불필요한 것을 치운다. 꽃이나 그림처럼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둔다.


대대적으로 바꾸고 싶다면? 하루 날을 잡아 모든 물건을 빼낸다. 깨끗이 청소하고, 새로 배치한다. 안 쓰는 건 과감히 버린다. 200~500만 원 정도 투자하면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된다. 묵은 때와 먼지에 눌려있던 생기가 되살아난다.


특히 생명이 있는 것들 - 화초, 물고기, 새 - 을 들이면 좋다. 생명은 그 자체로 강력한 진동을 만든다. 죽어있던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지혜


디지털 양자도약 시대. 우리는 신으로 진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생명 연장이 가능하고, 디지털 불멸이 논의되며, 다중 정체성이 일상이 된 시대.


사주팔자는 이제 절대적 운명이 아니라 참고자료다. 계절을 아는 것처럼, 우주의 리듬을 이해하는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파도를 만들려 애쓰지 말고, 오는 파도를 탄다. 비를 멈추려 하지 말고, 비와 함께 춤춘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말고, 내 주파수를 조율한다. 고정된 정체성에 매달리지 말고, 유연하게 변신한다. 하지만 중심은 잃지 않는다.


"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의식 확장. 이것이 새 시대를 사는 가장 중요한 지혜다. 운명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창조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장이다.


기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예언이 아니라 지혜다. 때를 알고, 에너지를 읽으며, 유연하게 대응하는 지혜. 그리고 모든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지키는 지혜.


운명? 그것은 이제 우리가 매 순간 쓰는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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