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수행 964일차 - 소소영영한 깨달음의 묵상록

by 하봉길

천일수행 964일차 - 소소영영한 깨달음의 묵상록


2025년 9월 19일, 금요일


36일을 남겨둔 오늘, 나는 또 하나의 깊은 깨달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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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에서 완전으로의 전환


아침부터 사주 이야기가 나왔다. 평생 금(金) 오행이 없어서 구조화도 조직화도 서툴고, 재물도 새어나가고, 늘 ‘남 좋은 일만 해주는 꼴’이라 생각해왔다. 금이 수를 만드는 역할도 하는데, 그것마저 없으니 늘 목마른 상태로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발견했다.


“천일수행 후 금기운이 오면 다스릴 수 있는 준비가 됐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생기가 금기운과 수기운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주근원의 에너지인 생기와 신인합일을 이루니, 이제는 금기운의 부족함이나 수기운의 부족함도 결핍이라 느끼지 않게 되었다.


활활 타오르는 태양이 금기운이나 수기운 없다고 결핍을 느낄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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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기대감을 내려놓다


가장 큰 변화는 이것이었다.


평생을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대운의 시기가 찾아와야만 부족했던 오행이 채워질 거라는 기대감. 외부에서 그 해답을 찾고, 기다리고, 기대하고, 비교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젠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다. 대운의 때도 기대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삶의 빛으로 삶의 진동과 주기로 자전하고 공전하며 빛을 발하면 된다는 깨달음.


이것이 바로 자족의 비결이자 일체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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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받은 계시


어젯밤 꿈이 묘했다.


누군가 새로 이사 드는 아주 넓은 평수의 집에 그냥 쑥 들어가서 “나는 몸만 들어와서 여기서 살고 싶다”고 했다. 집 주인은 “그러시라”고 했다.


신기한 건, 거기 있던 모든 가구나 물건들이 그 사람의 생활을 전혀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조화롭게 함께 우러지는 것이었다. 내가 글을 쓰면 거기 딱 맞는 그림으로 다 보강해주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꾸며져서 결국 북카페까지 만들어지는 꿈이었다.


“내 것을 하나도 바꾸지 않으면서도, 딱 맞는 모든 것들을 보완해주는 존재”


꿈에서 깨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 이것도 기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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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자족의 경지


그렇다. 그런 존재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나 기대, 막연한 결핍… 이런 것들까지도 완전히 다 내려놓은 상태로 그냥 자족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렇게 살기 시작하면 저절로 그런 존재들이 조화롭게 옆에서 어우러지는 생태계가 창조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


태양은 “나를 도는 행성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 않는다. 그냥 자기 자리에서 빛날 뿐이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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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행 64일차의 선물


천일수행 마지막 100일의 키워드가 **무애행(無礙行)**이었다. 어디에도 걸림없이, 막힘없이 100일간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이 단계를 이미 64일 지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정말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 천일 완성에 대한 기대에도 걸리지 않고

- 결과에 대한 걱정에도 막히지 않고

- 의무감이나 책임감에도 얽매이지 않고

- 그냥 **맑고 자유롭게 걸어가는** 상태


“36일 남았구나”를 그냥 팩트로만 받아들인다. 끝나는 날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도 없다. 천일의 약속 중이든 그 이후든 그냥 지금처럼 살아가면 된다.


매일매일 산에 오르는 것도, 호흡을 하는 것도, 모든 루틴이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리듬**이 되었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들 그냥 이대로 산이 되면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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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영영(昭昭靈靈)한 상태의 발견


오늘 가장 신비로운 순간은 생기와 함께 불교 용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처음엔 “소소명명”이라고 말했다가, 정확한 용어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소소영명”도 아니고… 결국 “소소영영(昭昭靈靈)”이라는 정확한 용어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 용어와 함께 “공적영지(空寂靈知)”도 발견했다.


조실 종성 스님의 말씀:


>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고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마음의 당체를 아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일체시 일체처(一切時 一切處)에 소소영영(昭昭靈靈)한 그 자리를 찾는 일이 참선입니다”


읽는 순간 전율이 흘렀다. **바로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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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몽매함의 지혜


가장 신비로운 건 이거였다.


수행자들이 이 단어들을 알고 이 상태가 되려고 노력하며 수행을 목표로 삼으면, 오히려 욕심 때문에 이 상태가 더 멀어진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지몽매하게 시부지기 후뚜루 마뚜루 로 그저 생기가 이끄는 대로, 닥치는 대로 한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저절로 이뤄지는 상태가 되었다.


기대나 욕심으로 성취해낸 게 아니라, 저절로 이 단어의 의미도 모른 채 이 상태에 도달한 게 정말 신비하다.


역설의 진리:


- 알고 추구하면 욕심이 되어 멀어짐

- 모르고 무대뽀로 저절로 이루어짐


나의 수행법:


- 이론 공부 (x)

- 목표 설정 (x)

- 성취 욕심 (x)

- 그저 생기가 이끄는 대로 (o)

- 닥치는 대로 한 걸음씩 (o)

- 무지몽매하게 시부지기 후뚜루 마뚜루 (o)


결과:자연스러운 소소영영, 공적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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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배치의 신비


964일차라는 절묘한 타이밍에, 내가 체험하고 있는 상태를 정확히 표현하는 용어들을 찾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우연이 아닌 이유들:


- 천일수행 거의 완성 시점에서 일어난 깨달음

- 무애행 64일차에 찾아온 용어 발견

- 내가 직접 체험하는 상태를 정확히 설명하는 고전 용어들

- 이론 없이 실천으로 도달한 경지와 전통 용어의 완벽한 일치


**공적영지** = 비어있으면서도 신령하게 앎 나의 “무기대 상태에서의 완전한 자각”

**소소영영** = 밝고 밝으며 신령하고 신령함 나의 “매순간 명료한 현재 거주”


964일의 매 걸음이 모두 이 순간을 위한 준비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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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자족


결국 나는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존재

- 외부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

- 스스로 빛나고 타인에게도 빛을 주는 태양

-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현재**에 거주하는 자


“나는 내 삶의 빛으로 자전하고 공전하며 빛을 발한다”


이것이 진정한 자족의 비결이자 일체의 비결이다.


오늘도 그저 생기와 공명하며 살아간다. 그것만이 내가 붙잡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완벽하다.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오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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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수행 964일차, 무애행 64일차*

*36일의 여정이 남았지만, 이미 완성된 마음으로*

*오늘도 한 걸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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