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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Dec 21. 2022

육아일기를 편지로 남겨보는 날.

엄마도 성장 중이란다.


아가야, 안녕. 들려주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 순간이 지나면 그 말들을 다 잊게 될까 봐 너에게 편지로 남겨보려 해. 스스로 글을 읽게 될 나이, 혹은 이런 편지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가 오면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서로를 보고 있을까.



작년 겨울, 2주가 넘게 열이 잡히지 않아서 마음을 졸이던 때가 있었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열이 났고, 긴 기간 아팠던 터라 초보 엄마인 나는 매일 초조하고 불안하고 걱정이 가득했단다. 다행히 처지지 않고 잘 먹고 잘 놀고 잘 지나갔지만, 네가 또 아플까 봐서 외출하는 게 무서웠어. 올해도 겨울이 시작되자마자 코로나에도 걸리고 감기에 걸린 너를 보면서 겨울이 싫어지기도 했단다. 아픈 너를 간호하면서 엄마 몸도 아팠지만 쉴 수 없는 상황도 힘들기도 했고. 그런 상황에서 너에게 화를 내고 후회하는 시간도 많았단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열도 나고 많이 힘들었단다. 엄마가 열이 난다고 말하니 네가 갖고 놀던 스티커를 엄마 이마에 붙여주며 이제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더라. 아마 네가 열이 나던 날, 이마에 올려줬던 물수건을 떠올렸겠지. 그동안 너에게 줬던 사랑과 마음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네 마음에 머무르고 있었나 보다. 소소한 너의 말과 행동 속에 그런 흔적이 느껴질 때면 엄마는 더 많은 사랑과 마음을 주고 싶다고 다짐하게 돼. 



사실은 말이야, 엄마는 지금도 엄마라는 역할이 참 어렵고 부담스러워. 나의 실수나 잘못된 선택으로 너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두려워. 모나고 이기적이고 게으른 내 성격 때문에 너를 외롭게 만들거나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기는 게 싫었어.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좋은 엄마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기지만, 모든 순간마다 너를 사랑하지는 못했어. 좋은 엄마가 아니라 그저 충분한 엄마로 존재하면 된다는 말들도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더라고. 너의 엄마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지만, 나처럼 부족한 사람은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는 자주 들었단다.


수많은 후회와 좌절도 했지만, 크나큰 사랑과 행복도 키워나가면서 시간이 흘렀어. 두 달 후면 너는 36개월, 세 돌이 되고 엄마는 엄마 경력 4년 차에 들어서네. 먼저 아이를 키운 선배들이 그러더라. 세 돌부터 몸보다 정신이 힘들어지는 게 육아라고. 지금도 몸도 마음도 힘든 나인데, 과연 얼마나 더 힘들어지는 걸까. 오히려 엄마와 아빠는 요즘 육아 황금기인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이 또한 한 때인가 싶어서 두려워져. 너의 말문이 터지고 호기심이 많아지고 기억력이 점점 좋아져서 사랑스럽고 귀여운 날들이라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 왜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는 날들이야.



아가야, 엄마는 엄마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도 성장하는 중이란다. 너를 만나고 더 성장하고 싶어 졌고, 그러면서 처음 겪어보는 성장통도 크게 앓기도 했어. 너와 내가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더 크게 성장통을 앓을지도 모르고 서로를 이해 못 할지 몰라. 엄마도 그랬거든.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엄마의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떠올리게 됐단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너도 세상에 처음 태어났으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겠지. 처음부터 잘할 수도 없고, 처음부터 다 알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엄마는 너를 키우면 키울수록 엄마의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더라. 엄마도 너에게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너도 언젠가 엄마의 마음과 노력을 떠올리게 될까.


곤히 잠든 너를 바라보며 오늘도 하루를 돌아본다. 조금은 어설프고 부족한 엄마지만, 그런 엄마에게 사랑과 마음을 가득 전해줘서 고마워. 불쑥 화내지 말라는 너의 말처럼 화보다 다정한 말로 너를 안아주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할게. 


오늘 하루도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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