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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흐르는 풍경

그 속의 너, 나 그리고 우리.

by 꿈을꾸다


사람이든 집이든 그 무엇이든, 어느 하나를 알아가려면 최소 사계절을 겪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1년 혹은 사계절. 그 시간은 길게 보여도 사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루 중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고, 1년 중 계절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게 다반사다.

나의 기분, 아이의 성장, 바깥 풍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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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온 지도 1년 6개월이 지났다. 1년이 지나면 이곳에서 지낸 후기를 정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미루기만 하다가 또 6개월이 더 흘렀다.

2021년 가을에 와서 2번의 가을, 2번의 겨울을 지났다.

2번째 봄을 맞이하는 지금, 글쓰기 챌린지 글동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 앞 풍경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기 위해 사진첩에 담아둔 풍경을 다시 살펴봤다.


에는 민들레가 온 동네에 펴서 노랗게 물들고, 하-얀 토끼풀도 눈길을 끈다. 눈으로 덮여있던 뒷동산도 초록빛으로 물든다. 물론 3월에도 4월에도 눈이 오고 우박이 오는 추운 동네인지라 5월이 돼서야 진정한 봄맛이 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산책 나온 칠면조나 두루미를 보는 재미도 있다. 나무를 쪼르르 타고 올라가 냠냠 열매를 먹는 다람쥐도 사랑스럽다. 가끔 산책길에 만나는 토끼도 라쿤도 반가운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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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동네 이웃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하고, 물놀이를 했다. 풍성해진 나무 그늘 밑에서 간식을 먹으며 공동육아도 했다. 집 앞에 돗자리를 깔고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간이테이블을 펼치고 브런치를 즐기기도 했다. 아이는 소풍이라고 부르며 바깥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책을 보거나 놀이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동네 아이들도 나무에 타고 오르거나 해먹을 타고 놀며 신나게 풍경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 가족이 함께 본 첫 무지개도, 까만 밤을 빛내주던 반딧불이도- 예쁜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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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되었다. 각 계절이 모두 아름답지만, 가을의 빛깔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 있다. 빨강, 노랑, 주황, 초록 등 각각의 색깔이 어우러지는 수채화 같은 풍경. 그리고 때가 되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까지. 낙엽을 모아서 미술 놀이를 하기도 하고,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 소리를 즐기기도 했다.

아이는 맘에 드는 낙엽을 줍느라 10분이면 갈 거리도 30분이 걸리도록 더디게 걷곤 했다.

가득 모은 낙엽을 엄마 선물이라며 전해주던 예쁜 마음. 그 마음이 나를 웃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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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징하다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이곳의 겨울은 미국에 오기 전부터 길고 춥다고 들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눈도. 가끔 체감온도가 20-30로 가는 일상도 있었지만, 지내보니 생각만큼 못 살 정도로 춥진 않았다. 그러나 정말 징하게 긴 겨울과 수시로 내리는 눈은 적응이 어려웠다. 한국과 비슷한 날씨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평생 이렇게 많은 눈을 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자주, 많이 눈이 왔다. 한국에 살던 동네는 눈을 보기가 어려웠던 곳이라 눈 폭풍이라는 단어를 직접 뉴스에서 들은 것도, 겪은 것도 처음이었다. 눈을 떠서 집 안에서 눈을 갖고 놀기도 했다. 눈썰매도 끌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 오리도 만들며 눈을 즐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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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월이었던 아기는 곧 39개월이 된다. 사진 속 아이는 참 작고 어렸다.

지금도 작고 소중한 아이인데, 그때는 얼마나 어리고 작았을까.

그런 아이에게 나는 왜 그리도 화를 내며 모질게 굴었을까.

그리고 여전히 여유롭지 못한, 깐깐한 엄마일까.

문득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지나간 추억이 그리워졌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사진 속 아이는 행복하게 웃고 있다.

잔디밭을 뛰어놀고, 낙엽을 줍기도 하고, 눈썰매도 타고 놀며 계절을 가득 느꼈던 우리.

나의 미안하고 부족한 마음은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행일까.

아이의 지나온 사계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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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흐르고 있는 사계절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으면 좋겠다.


떠나기 전, 남은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즐기다가 떠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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