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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Aug 21. 2024

4살 아이와 LA 여행, 여행과 훈련 그 사이 어디쯤.

돌아보면 결국 추억.


국에 왔을 때부터 언젠가 시간이 맞으면 LA에 살고 있는 남편 동기 부부를 만나기로 했다. 남편의 휴가는 주로 여름이었다. 첫해 여름에는 미네소타 덜루스에 다녀왔고, 그다음 해에는 캐나다 토론토와 나이아가라 폭포에 다녀왔다. 세 번째 여름인 올해는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했다. 겨울에 갔던 뉴욕을 갈 것인지, 가보지 않았던 다른 곳을 찾아볼 것인지 등. 그러다가 남편 동기 부부를 만나러 LA에 가기로 했다. 미국에 온 지 약 3년 만에 드디어 만나기로 한 것이다.


남편은 LA에 가기로 한 후로 동기를 오래간만에 만날 생각에 즐거워했다. 물론 열흘의 휴가를 위해 업무를 처리하느라 매우 바쁘고 힘든 날을 보내기도 했다. 어쨌든 항공권 발권 후 틈날 때마다 가서 하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것을 적으면서 여행을 기다렸다. 보통 3박 4일 혹은 4박 5일로 떠나던 휴가였는데, 이번 여행은 10박 11일이라 짐을 챙길 때도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뭔가 색달랐다.


10박 11일 중에서 2박은 호텔, 1박은 에어비앤비, 1박은 리조트였고, 나머지는 남편 동기 부부네에서 묵었다. 도심 관광을 할 때는 메트로, 버스, lyft 등을 이용했고, 장거리를 다닐 때는 남편 동기가 빌려준 차를 이용했다. 다양한 측면으로 남편 동기네가 챙겨준 덕분에 열흘을 여행했지만 여행 경비는 생각보다 많이 쓰지 않았다. 우리는 위스콘신 기념품, 감사 선물, 기프티 카드, 감사 편지를 전했다.

사실 나는 남편 동기 부부와 초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 전에는 숙박이나 차량 등을 챙겨주는 게 부담스러운 마음이 컸다. 그런데 직접 만나서 지내보니 부담스러운 마음보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이 컸다. 아이도 자기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이모와 삼촌을 만나니 행복해하고 즐거워했다. 남편도 이역만리 타국에서 동기들을 만나니 좋아했다.  


여행을 오기 전부터 우리 부부가 계속 마음에 새겼던 것이 있다. 4살 아이와 함께 하므로 너무 욕심내거나 무리하며 여행하지 않기로. 솔직히 체력은 우리 부부보다 아이가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와 다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거나 예상 소요 시간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 많다. 그래서 하루에 1곳 혹은 2곳 정도 돌아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가고 싶은 곳을 구글 지도에 저장해 두고, 상황을 보면서 일정을 조정하기로 했다. 일정표를 짜고 여행 책자 수준으로 정리해서 여행을 떠나야 마음이 편하던 과거의 나는 사라진 지 오래됐다.


여행하는 동안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첫 번째는 아이는 여행하는 동안 계속 자란다는 점이다. 지난 여행들을 떠올려보면 아이는 이번 여행에서 한층 자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법 긴 계단도 투정 없이 잘 오르기도 하고, 대중교통에서도 의젓하게 앉아있기도 했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진 어린이와의 여행은 지난 여행에 비하면 수월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표현하는 능력도 다양해졌다.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여행과 훈련 그 사이 어디쯤이라는 점이다. 여유롭게 여행 풍경을 만끽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보고 싶던 일몰 풍경을 멍하니 바라볼 때나 바닷가에서 파도치는 소리에 빠져들 때 등. 여행 기분을 즐기려는 순간,   아이의 칭얼거림이 현실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다리가 아프다, 집에 가고 싶다,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이게 안 된다 저게 안 된다 등. 작은 가방 하나 들고서 가볍게 훌쩍 나서고 싶지만, 여벌옷이나 간식 등을 챙기다 보면 가방도 크고 무거워진다. 이것은 극기 훈련인가 여행인가 싶은 마음이 울컥 올라온다. 쉽지 않지만, 아이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해 본다. 아이도 이게 여행인가 훈련인가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실제로 아이는 여행은 재밌고 신나지만, 원래 우리 집에도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체력과 정신력을 더욱 기르자였다.


마지막으로 여행은 일상처럼, 일상은 여행처럼 생각하자는 점이다. 여행을 왔으니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욕심을 내면 탈이 난다.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으로 쫓기듯이 다니면 당장 눈앞의 풍경이 주는 행복을 보지 못한다. 일상을 보내듯 편안하게 여유롭게 그 순간을 바라본다. 달리 생각하면 일상도 여행처럼 새롭고 신기한 듯 바라본다. 같은 풍경이라도 바라보는 내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눈앞의 풍경도 늘 보던 동네 풍경이다. 그런데 여행 온 기분으로 글을 쓰다 보니 하늘도 나무도 도로 위의 차들도 신선하게 보인다.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한 게 아니라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도 일상에서도 여유가 없다면 무엇을 보아도 권태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여행을 다녀온 지 3일이 지났다. 기억은 빠르게 날아가고 있다. 이 감정과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얼른 붙잡아 기록해 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돌아보면 결국 추억이 된다. 이번 LA 여행은 여행과 훈련 그 사이 어디쯤 같으면서도 일상처럼 편안하기도 했다. 작년 여름 여행 이후 약 1년 동안의 나는 꼬이고 엉킨 실타래 같던 일상을 풀어보려고 끙끙거렸다. 그 꼬임과 엉킴을 풀어낼 힌트를 이번 여행에서 살짝 찾은 느낌이 든다. 나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하반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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