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9.
말만큼 쉽지 않다.
특히나 지금처럼 녹화를 한 달 정도 남긴 시점이 되면 마치 '거대한 힘에 밀리듯이' 내 몸이 시간에 떠밀려가게 되고, 잠 몇 번 잔 거 같은데 어느새 내일이 녹화날이다. 한 달 전이면, 죽 벌려놨던 캐스팅을 마무리해야 하고,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정확히 얘기해줘야 하고, 미술감독에게 원하는 공간을 구체적으로 얘기해서 한 달 후 무대가 제대로 서게 해야 한다.
사진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엔 노래 잘하는 사람, 춤 잘 추는 사람, 연기 잘하는 사람, 드라마 잘 만드는 사람이 참 많다. 사진 잘 찍는 사람도 물론... '어떻게 저렇게 찍을 수 있을까?' 폰으로 무심하게 찍은 사진도 잘 찍는 사람이 찍으면 뭔가 다르고, 포토샵 하나도 안 거친 옛날 필름 사진을 보고 '어떻게 저 엄청난 순간을 한방에 포착할 수 있었을까?' 감탄에 감탄을... 그러다 저분들이 한자리에 모여 컴피티션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하나씩 살을 붙이고, 또 하나씩 과한 부분을 덜어내면서 여기까지 왔다.
"사진작가들이 컴피티션에 나올까요?"
비슷한 얘기를 나가수 처음 기획하던 쌀집 아저씨한테 한 적이 있다. "가수들이 나오겠어요?" 나름 음악 프로그램 좀 해봤다고 한 시간 정도 일산 스튜디오 대기실 구석에서 쌀집 아저씨에게 까다로운 우리나라 가수들 얘기, 이 프로그램을 할 수 없는 이유 등등에 대해 떠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가수 시작하자마자 난리가 났다. 어떻게 저 훌륭한 가수들을 데려다 경쟁을 시킬 수 있냐고, 이건 가수들과 음악에 대한 모독이라고. 그런데, 세상은 논리적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절대. 그 해 나가수는 우리를 들었다 놨고, 나의 알량한 예측은 묻혔다. 이번에 사진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그 샤이한 사진작가들이 과연 카메라 앞에 서겠냐는 질문을 많이 접했다. 그럴 때마다 나가수 얘길 건넸다. "세상은 네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대로 가지 않아. 절대!"
몇 달 준비하면서 인스타그램을 뒤져 찾은 사진작가들을 20명 가까이 만났다. 작가들과 그들 가운데서 선별한 다양한 조합을 만들며 고민하는 중이다. 내일 1시에 모여 엔트리들을 확정하고 다음 주부터는 그들에게 어떤 미션을 부여할 건지, 그 미션들을 어떻게 프로그램 포맷화 할 건지 하나씩 구체화해야 한다. 그뿐일까? 심사위원들도 몇 분 더 확정 지어야 하고 함께 출연할 아이돌 캐스팅도 마무리해야 하고 다음 주에 미술감독, 카메라감독, 미디어 월 디자이너와 함께 방문할 스튜디오 스터디도 밀려있다. 아, 그러고 보니 사진작가 캐스팅을 확정하면 바로 보내야 할 출연계약서 초안에 대해 변호사와 내일 아침에 통화하기로 했다. 역시 한 달 남은 게 맞군 ㅠㅠ
그럼에도 '힘 빼고 준비하자'고 매일 다짐 중이다. 음악프로그램 연출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이 충만해 크게 벌렸던 '2011년 가요대제전'이 조직의 백업을 받지 못해 자충수가 되었던 기억, 홍대 음악씬을 살려보겠다며 정의감을 옆에 끼고 사전녹화로 시작했던 코너가 '2005년 카우치 사건'으로 대중들의 기억에 남게 된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신 아주 힘 빼고 부담 없이 즐기며 만들었던 '2006년 메탈리카 815 공연'은 지금도 사람들 기억 속에 유쾌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내일은 오후 늦게 김중만 선생과의 미팅이 잡혀있다. 심사위원으로 모시기로 결정하고 두 번째 미팅. 참 많은 얘기가 오갈 듯. 프로그램에 대해서, 또 사진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