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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eproducer Dec 07. 2022

피디/기자 공채 패스 노하우?

#언론사 #공채 #시험문제 #특히나필기시험 #면접도

꽤 오래전 일이다. 방송사 공채시험 준비한다고 삐삐를 집에 두고는 새벽 전철 타고 학교 도서관 갔다가 저녁에 오는 생활을 했던 게.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옛날이라 요즘은 어떤 시스템으로 전형을 진행하는지 관심도 없지만 얼마 전 내가 만들던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위해 모인 대학생들이 의외로 공채 준비에 진심인 것을 알곤 생각나는 대로 Q&A를 하면서 노하우를 무료 전수한 적이 있다. 의외로 그때와 별로 달라진 거 같지 않더군. 방송사나 입사시험 준비하는 학생들이나. 내가 전에 있던 회사도 그렇고 대부분 필기로 '상식' 시험을 치르는 데, 이 상식이라는 게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지식"이다. 내가 아는 게 나오면 맞추는 거고, 모르는 걸 물어보면 그냥 운에 맡길 수밖에. 


노하우 1. 필기시험 문제 출제자가 엄청난 학식을 가진 뛰어난 인간이라고 착각하지 말 것. 

나도 시험문제 출제를 위해 2박 3일 합숙 들어간 적이 있지만, 출제자들은 대부분 그 회사에서 10년 전후로 근무한 사람들이다. 굳이 돈 들여서 외부 유명 석학들에게 의뢰하진 않는다. 시험 며칠 전에 피디, 기자, 경영, 기술 등등 다양한 파트에서 몇 명씩 뽑아 외부와 단절된 공간 (우리 회사는 연수원)에 가두고 문제를 뽑으라고 시킨다. 다들 자기 파트에서 일만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갇혀 문제를 만들어내라고 하니 황당하지만 그래도 왕년에 시험 좀 봤던 사람들이라 이것저것 뒤적이며 고민해보고 한 두 개씩 문제를 뽑아낸다. 과연 이들이 어떤 문제를 뽑을까? 우선은 평소 자기의 관심사다. 예능 피디는 연예인에 대한 문제를 낼 거고, 경제기자는 최근의 경제 이슈, 엔지니어는 IT 관련해 최근 화제가 되었던 것들을 모을 수밖에 없다. 상식책에 나오는 절대 알 필요가 없는 희한한 지식들은 나올 수가 없다. 왜냐면 자기들도 모르니까. 출제자들에게 인터넷이 허용될까? No! 그렇다면 그들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뭘까? 입장을 바꿔서 '내가 출제자라면?'이라고 생각해보면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피디를 하고 싶다면 최근 공개된 콘텐츠 관련 내용을 달달 외우면 될 거고, 기자가 꿈이라면 최근 두세 달 사이에 이슈가 된 단어나 쟁점들에 초점을 두면 된다. 아마 절반 이상이 이 수준에서 나올 듯. 거기서 한발 더 나간다면 기본적인 테크닉이나 시스템에 대한 공부를 해 둘 필요가 있다. 어느 회사나 신입이 들어오면 바로 일 시키길 원하지 교육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건 다 알고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전에 냈던 문제 중에 '라이트 모티브(Leitmotiv)'를 설명하라는 것과 '컴마 촬영과 인터벌 촬영의 차이점'이 뭔지 말해보라는 게 있었다. 라이트 모티브에 대한 관심은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한 뮤지컬에 푹 빠져있던 시절에 생겼고, 컴마와 인터벌은 두 용어가 방송 현장에서 개념 없이 혼용되는 게 못마땅해 출제하기 얼마 전에 여기저기 뒤져 확실하게 그 차이점을 알고 있었던 용어였다. 일단 자기가 지원하려는 분야가 명확해졌다면, '내가 이 분야에서 10년 정도 근무한 사람이라면 뭐에 관심이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혹은 주변에 던지시길. 절대 도서관 구석에 먼지 쌓인 백과사전에서 찾아낸 아무도 모르는 지식을 물어보지 않는다. 출제자가 변태가 아니라면... 아 사족 하나 더. 언론사 시험 준비하는 카페에서 뽑는 예상문제들은 그냥 참고만 하는 게 좋다. 그 문제는 절대 안 나올 테니까. 왜냐 하면 인사부에서 시험문제 출제위원들에게 그 예상문제들을 뽑아서 준다. "이 문제는 웬만하면 내지 마시라" 얘기하면서.


노하우 2. 자기소개서는 상투적인 표현 다 빼고 최대한 간결하게 쓸 것.

전에 피디 지원자들 자기소개서를 심사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카르페 디엠'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바로 감점 줬던 기억이 있다. 사람을 뽑으려는 측은 대부분 그렇겠지만 방송사에 들어와 나름 치열하게(또는 지 잘난 자뻑에 도취해)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서 뭔가 남과 다른 독특함을 발견할 때 흥미를 느끼고, 남들 다 하는 걸 따라 하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못 느낀다. 혹시 내가 지금 사용한 단어가 멋있긴 하지만 너무 흔해 심사위원들이 지루해하진 않을지, 더 매력적이고 저들이 흥미로워할 단어는 없는지, 또는 약간의 과장을 섞거나 변형을 가해서 이 단어가 가지는 다른 측면을 부각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는 게 좋을 듯. 

그리고, '효자, 효녀' 코스프레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아버지'라고 적으면 심사위원들은 '얘는 이렇게 대인관계 폭이 좁은가?' 생각할 테고, '어머니'라고 적으면 '아주 가정적인 친구군'이라고 볼 가능성이 높다. 최대한 특이한 인물을 찾아서 그들의 업적(또는 실적) 요약본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거나 그 사람 관련 책을 한 권 읽고 나와의 연결 고리를 만든 다음에 그걸 마치 '나도 그런 사람인 양' 포장해서 자기소개서에 집어넣는 게 훨씬 현명한 방법이다. 그래야 눈에 띈다.

문장은 항상 두괄식으로 간결하게 쓸 것. 이 업계에 들어와 보면 알겠지만, 피디나 기자들은 다들 급하다. 밥도 빨리 먹고, 술도 아주 빨리 마신다. 내가 신입 때 부서 회식을 갔는데 저 끝에 부장님이 앉으시고 나는 말단에 앉은 상황이었다. 식당 이모님이 쟁반에 담아 저 위부터 식사를 하나씩 날라 오시는 데 여러 번에 걸쳐 가져오다가 결국 내 테이블에도 음식이 와서 숟가락을 드는 데 갑자기 부장님이 이쑤시개 하나 딱 들고는 "다 먹었냐?"하고 물어보시는 거다. '이런, 이 미친 속도감은 뭐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다들 일어나기 시작해서 주섬주섬 옷을 챙기는 와중에 번개처럼 다섯 숟갈 정도 먹고 뛰어나갔다. 그때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내가 부장이 되고 보니 회식 가서 신입들이 어찌나 밥을 천천히 드셔주시는지, 아주 그 거북이 같은 속도감에 경악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요는, 글은 중언부언 주절주절 하지 말고 최대한 간결하게 쓰되 중요한 말은 앞에서 하는 게 답이다. 5개의 문단으로 자소서를 쓴다면 5개의 문장에 목숨 걸 필요가 있다. 각 문단의 첫 문장이다. 그 이후 문장들은 묻힐 가능성이 크다.   


노하우 3. 면접은 최대한 튈 것.

일단 허둥대지 말자. 면접관이 질문했는데 허둥대면 무조건 불리하다. 뭘 물어봐도 '내가 이거 물어볼 줄 알고 준비했지'라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 특히 기자를 하고 싶다면 더 중요한 부분이다. 기자는 밖에 나가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싸우기도 하고 취재를 해야 하는데 면접관의 (뻔한)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글쎄... 피디도 마찬가지. 그 기 센 연기자, 가수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 사람을 뽑으려고 하는 데 면접장에서 멘털이 흔들리는 나약함을 보이면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정답을 외워가려 하지 마시길. 어차피 면접에 정답은 없다. 내가 얼마나 잘났고 기가 센지만 어필하면 된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 수준만 아니라면 적당한 과장도 필요하다. 어차피 뭔 소릴 해도 나중에 면접관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혹시 나중에 입사하고 나서 그때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그냥 한 번 씩 웃어주면 끝이다. 방송계는 그런 곳이니까. 

면접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실무자 면접도 있고 중간간부와 만나는 면접도 있고. 그 경우는 누가 나올지 몰라 준비하기 쉽지 않겠지만, 혹시 운이 좋아 최종면접까지 갔다면 그 자리에 올 만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사전 조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누가 사장이고 부사장인지, 내가 지원하려는 분야의 담당 이사나 국장은 누군지... 그들에 대해 충분히 조사를 하고 간다면 그들을 말로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적당히 칭찬하고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면 분위기는 좋아질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그들의 질문에 배짱 좋게 차분히 대응하는 건 지원자의 몫이고.  

기자나 피디를 지원하는 사람이라면 면접장에선 '나'만 생각하자. 남들과의 '조화'나 '협력', '배려'는 들어간 다음 얘기고, 면접장에선 최대한 남과 다르게 튈 일이다. 



오래전에 본 신입 면접이지만 그동안 필기시험 출제, 자소서 평가, 면접 등등에 참여하면서 '참 안 변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시스템도 참가자도. 필기시험 준비를 너무 오래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문제가 많이 나오거나 찍어서 맞춘 게 많으면 점수가 잘 나올 거니까. 반대로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내가 모르는 것만 물어보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 내가 자소서를 수 십 번 고쳐 썼어도 그걸 읽는 심사위원의 기준에 못 미치면 어필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상위 원칙이라는 게 있어도, 심사라는 건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결정이다. 그래서 떨어졌어도 크게 실망할 필요 없다. 저 사람과 내가 안 맞는 거니까. 내가 서류나 면접에 합격하면 심사위원과 코드가 맞은 거고 떨어졌다면 내가 은연중에 그가 싫어하는 문장을 넣었거나 언행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내가 꼭 저 방송사에 들어가고 싶다면 그 과정에 있는 이들이 뭘 생각하고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게 첫 단계다. 그러기 위해선 심사위원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그가 원하는 게 뭘까 고민하는 과정이 필수. 특히나 말 잘 듣는 사람들보다 튀는 사람을 선호하는 방송/언론계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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