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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eproducer Oct 19. 2022

누가 찾아왔다

#이사후첫손님

"누구세요?"

자정이 좀 넘었을까? 정리하고 잘 준비할 무렵 케이트가 현관에 대고 외쳤다. 처음엔 그녀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누가 찾아오거나 택배가 올 시간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고양이가 현관에서 부스럭거린 것도 아니다. 우리 겁쟁이 쿠우는 이사 온 후 옷장에 숨어 들어가 며칠 째 코 빼기도 안 비치고 있다.


"누구세요?"

케이트 목소리가 커졌다. 잘 들어보니 누군가 밖에서 현관 번호키를 누르고 번호가 일치하지 않아 문이 열리지 않고 삑삑 소리 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소름이 확 돋는다. 이사 온 지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혹시 강도나 도둑? 나도 덩달아 중문 뒤에서 외쳤다.

"누구시냐구요!"


잠시 조용해지나 싶더니 다시 키패드를 누른다. 역시나 문은 열리지 않고... 누구냐고 묻는데 계속 키패드를 누르는 걸 보니 최소한 도둑이나 강도는 아니겠다 싶어서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물었다.

"누구야?"

아무 대답이 없다. '도망갔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응 나야"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아까 돋은 소름에 얹혀서 더 큰 소름들이 팔, 어깨를 거쳐 정수리까지 올라가는 것 같다. 누구지? 우리 애들은 기본적으로 반말을 안 해서 보이스 피싱으로부터 부모를 지켜주고 있는데 ('엄마 나 전화를 잃어버려서 그러는데 이 번호 저장해줘'라고 문자가 오면 무시하고 바로 지워버린다) 반말이다. 나한테.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젊은 여자면 나랑 케이트가 감당할 수 있겠다 싶어 (그리고 우리 딸일 가능성도 솔직히 없진 않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여자의 정수리가 보인다. 시선은 현관 바닥을 향해있고, 어깨에 가방을 멘 채 한 손에는 폰을 들고 다른 손에는 목도리를 둘둘 감아 들고 있다. 

"누구야?"

그래도 혹시 우리 딸들 중에 하나일까 싶어 반말로 물었다. 한 집에 살지만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 얼굴을 볼 틈이 없다 보니 못 본 새 외모가 이렇게 바뀌었나 싶기도 하고, 얼핏 보니 키나 스타일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고개를 숙인 채 좀비처럼 천천히 걸어 들어오니 케이트가 기겁을 한다. 

"누구신데 남의 집에 막 들어오는 거예요!"

최소한 우리 딸은 아니란 걸 확신하고 나도 뒤에서 물었다. 

"누구세요!"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하얀 얼굴에 대학생 정도로 보인다. 케이트는 온몸으로 막고 있고, 그녀는 계속 밀고 들어온다. 그냥 놔두라 했다. 케이트가 손에서 힘을 빼자 그녀는 중문 안쪽으로 밀고 들어와 거실 입구에 털썩 주저 앉더니 옆에 있던 빈 종이박스에 얼굴을 묻고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밖에서 다 비우고 왔는지 왝왝 소리만 나오고 건더기는 나오지 않는다.


"엄마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나름 좋은 아이디어라고 엄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얘기했는데 대꾸가 없다. 한두 번 더 물었는데도 답이 없다. '어쩌지? 아, 혹시 교폰가? 영어로 물어봐야 할까? 음... Give me your mom's phone number라고 해야 하나? What's your mon's number 인가?' 고민하고 있는데, 소란스러운 상황이 궁금했는지 문을 열고 몸을 반만 내밀고 구경하던 앞 집 아저씨에게 케이트가 물었다. 

"저희 며칠 전에 이사 왔는데요, 이 학생 혹시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인가요? 어디 사는지 아세요?"

그 양반 당황하더니 그 집엔 어린아이들과 부부밖에 없었다고 얘기해주고는 문을 닫아버린다. 


"경비실에 전화 걸어봐요"   

케이트 말에 경비실에 전화 걸어 젊은 여학생이 한 명 취해서 우리 집에 왔는데 와서 좀 도와달라고 하니 일단 황당해하고 '여학생'이라는 말에 경비 아저씨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때 그녀 가방 옆에 놓여있던 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무음으로 해놔서 소리는 안 나는데 전화 화면에 부재중 통화 4통이라는 문장과 함께 '엄마'라는 글자가 떠 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다짜고짜 전화를 집어 들었다. 지금 안 받으면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전화 상대방은 꽤나 놀랐는지 말을 잇지 못한다. 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여기가 어디고 이 학생이 12시 넘어서 현관 키패드를 여러 차례 눌렀고, 문을 여니 밀고 들어왔고... 설명부터 하고 난 후에 댁이 어디냐고 물으니 같은 동이랜다. 오 마이 갓. 올라와서 데려가시라고 얘기하고 케이트와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데 잠시 후에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아주머니가 뛰어들어 오셨다. 현관 안쪽으로 들어오자마자 종이박스에 엎어져 있는 딸을 발견하고는 우리의 예상대로(?) 등짝을 한번 후려치더니 또 우리의 예상 그대로 멘트를 일갈하신다. 

"얘가 뭐하는 짓이야? 동네 창피하게!"  

가방이랑 폰이랑 목도리랑 잘 챙겨서 엘리베이터에 넣어드리니 어머니와 딸은 내려가고 우린 자정 넘어 좀 전에 30분 동안 벌어진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안주삼아 식탁에 앉아 수다를 떨고...


다음 날 11시 좀 넘어서 어머니와 딸이 찾아왔다. 민망할까 봐 난 방에 있었고 케이트가 나가서 만났다. 얘가 보통 안 이러는데 어제는 술 마시는 페이스를 놓쳤다며, 처음이라며, 이제 술 끊기로 했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환담을 나누는 소리를 벽 너머로 듣기만 했다. 두 사람이 돌아간 후에 식탁으로 온 케이트에게 물었다. 

"분위기가 어때?"

"응 딸은 아직 술이 덜 깼는데 엄마한테 붙들려 온 거 같고, 엄마는 어젯밤과 너무 다른 분위기의 풀메이크업에 정장을 입고 오셨어. 아주 정식으로 사과하는 분위기고 고상한 분이네. 재밌다. 아, 그리고 과일을 잔뜩 사 오셨네" 

그러고 보니 현관에 과일 바구니가 놓여있다. 가져와 보니 이사하느라 냉장고를 비워서 요 며칠 못 먹어 고팠던 과일들이 하나 가득이다. 싱싱하고 맛있고.


"그 친구 종종 오면 좋겠는데 ㅎ 다음번엔 놀라지도 않을 텐데 말이지 ㅋㅋ"

이사 오고 나서 특이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소소한 복도 들어오고... 이 집이랑 나랑 잘 맞아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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