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도 한 걸음씩
남편은 이제 환갑이다. 2023년 8월 여름. 초진기 알츠하이머병으로 최종 진단받았다.
의사는, 65세 이전 초로기 치매는 3-4년 사이 급속히 나빠진다고 했다.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나한테 의사는 지켜보자 한다.
배회충동 운동장애 렘수면행동장애 성격변화 등등.
앞으로 첩첩산중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사 다 마찬가지겠지만 치매는 정말이지 내 일로 닥치기 전까지는 이해가 안 되는 병이다.
시인 김수영은 생활이 모든 것을 제압한다는 시를 썼다.
치매야 말로 그랬다. 생활의 모든 것을 제압했다. 그럼에도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 좋다는 건 다 해봐야 한다.
닥치는 대로 치매 관련 책을 읽고, 유튜브를 찾았다.
거의 예방법 위주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식단과 운동과 수면. 그리고 인지강화활동이 관건이었다.
단백질 위주로 먹고, 근력과 유산소 운동을 한다.
밤 10시에는 무조건 잔다. 인지기능이 좋아지기 위한 활동이 핵심이다.
읽기, 쓰기, 말하기 위주로 노력했다. 뭐든 읽고 뭐든 쓰고 뭐든 말한다.
일기를 쓰고 일일기록을 한다. 책을 읽고 시를 외운다.
취미 활동도 하러 다닌다. 그렇게 남편은 고3 수험생 못지않게 생활한다.
지난 2년. 눈물바람의 연속이었다. 남편한테 막 이혼하자고 상처 주는 말들을 쏟아냈다.
나는 나대로 내 바닥을 계속 확인했다. 어디까지 이렇게 나쁠 수가 있을까 싶었다.
치매 관련 동영상을 보면 배우자들이 그렇게 극진할 수가 없다. 어떻게 저렇게 잘할까 싶다.
하다못해 치매 걸린 개를 위해 고양이가 제 머리로 개의 턱을 받쳐주는 것이다.
고양이 표정은 무심하지만 온몸을 바쳤다. 비틀거리는 리트리버를 끌어안고 같이 자빠지는 것이다.
아 나는 저렇게 못하겠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치매는 왔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남편이 안쓰럽고 하루하루 잘 지나감에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구나.
오늘도 큰 일 없이 지나갔구나. 그래 이러면 되는 거지.
언제 감정이 날뛸지 모르지만, 요즘은 그렇다.
작년 여름 남편과 저녁에 산에서 맨발 걷기를 했다. 산 중간쯤 오다가 뒤를 돌아봤다. 너무나 깜깜했다.
세상에 저렇게 깜깜한데 어떻게 걸어왔지?
그리고 앞을 봤다. 여전히 앞도 깜깜했다.
저렇게 깜깜한데 어떻게 가지?
그리고 우리는 발을 봤다. 깜깜하지 않았다.
스마트폰 불빛은 우리의 딱 한 치 앞만을 비춰줬다.
우리는 그렇게 앞도 뒤도 깜깜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씩만 보며 걸어왔던 것이다.
언제 저물었는지 모르게, 날은 저물게 되어있다.
앞으로도 첩첩산중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한 걸음 한걸음이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무거운 발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오늘을 건너뛸 수는 없을터.
제아무리 첩첩산중도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한 걸음부터다.
한 걸음씩 어느새 2년을 걸어왔다.
그렇게 1년씩 연장하며, 노년으로 가는 걸음마다 한 치 앞 불빛으로.
한 걸음씩 우리는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