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밤

호랑이 안반지고 온단다

by 채송화

나한테 위대한 유산은 엄마의 옛날 얘기다. 아홉 살에 '교통안전'이라는 글짓기로 상을 탔다. 이후로 학교에 다니면서 늘 '문예'가 붙는 언저리에 있었다. 지금은 모두 '글쓰기'로 부르지만 80년대는 글짓기라고 했었다.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께서 글쓰기운동을 하면서 지금은 글쓰기가 당연해졌다. 글은 살아 있는 말로 '쓰는 것'이지 거짓으로 꾸며서 '짓는 것'이 아니라면서. <살아있는 글쓰기>는 아직도 살아 있을까.


사 남매 가운데 내가 막내다 보니 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아마 옛날 얘기를 들었지 싶다. 태어나서 스물아홉,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졸랐었다. 들었던 얘기지만 들을수록 더 재밌었다.

또 해줘. 또 해줘. 하나만 더 해줘.

"호랑이 안반 지고 온단다. 아이구 무서워라"

이러면 잘 시간인 거다.

얼마나 해학적인가. 그 어디에도 자라는 말은 없다.

안 자고 버티다가는 호랑이가 지고 온 안반으로 안 자는 애들을 찍어 누를 것이다.

안반에 깔려 죽지 않으려면 자야 한다.


내가 어릴 때부터 듣던 옛날 얘기를 책으로 처음 봤을 때 참 신기했다. 엄마는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았지.

커서 스무 살이 넘었을 때 구비문학을 녹취해서 만든 책을 읽었다. 지은이가 수집한 과정을 그대로 적었는데, 어느 노인이 누워서 얘기하는 상황까지 그대로 쓰여 있어서, 읽다가 한참 웃었던 생각이 난다.

우리 엄마한테 물어봤다면 제일 재밌게 했을 텐데 싶었다. 그래서 나도 녹음을 했었다. 지금도 그 카세트테이프를 간직하고 있다. 엄마 목소리. 엄마는 얘기하고 나는 가끔 '응 그래?' 하는 추임새가 들어있다.

엄마는 오십 대 나는 이십 대. 언젠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울었어?"

"그럼 안 우나?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난 또 나이 먹으면 안 우는 줄 알았지"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도 철부지였을까.

내가 지금 엄마 나이가 됐는데, 나는 엄마가 늘 너무나 보고 싶다. 우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엄마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고 부처님이 그랬다는데. 나는 어떻게 이렇게 가난한 항목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체크가 될까.


스무 살이 넘은 어느 해 겨울이었다. 외가에 엄마는 나를 데리고 갔다.

나한테 '진짜 옛날 얘기'를 들려주려고.

고향의 할아버지들이 초빙되었다.

절골 할아버지들이 밤이 이슥하도록 외갓집 사랑방에 앉아서 옛날 얘기를 했다.

호랑이가 새댁을 잡아먹고 단지를 엎어놓는 대목을 얘기했다. 치아가 넓적하고 누런 할아버지들을 보자 나는 저이들이 호랑이로구나. 인간 노인으로 둔갑해서 내려와 앉아있구나. 또 상상력이 발동되는 것이다. 나는 얼른 털어내고 인사하고 소개하고 했다.

외할머니와 외숙모와 아지미는 불지핀 아랫목에서 '과질'을 먹었다.

외삼촌과 외할아버지와 절골 할아버지들은 사랑방에 둘러앉아 옛날 얘기를 풀어냈다.

나는 정지(부엌의 강원도 말)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쬐며 오촌들과 떠들다, 쥐가 몸배바지에 들어간 일화를 듣고 배가 찢어져라 웃어댔다. 방에서 내 웃는 소리를 듣던 외할머니가 "정제 뭔 개가 짖나?' 물었다고 한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터진다.


노인들이 돌아가며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날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토크 박스' 강원도 버전을 보는 듯했다.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쓰러져 있는 커다란 나무를 밟았는데 미끄덩하더라는 것이다. 이끼가 '얼룩덜룩 쌔파랗게'끼어 있어 영락없는 나무라고 생각했는데, 설설 기어가더라는 것이다.

강원도 깊은 산속. 원시림. 정글. 밀림. 왠지 산속에 아나콘다가 살고 있을 거라는 확신까지 드는 얘기다.


호랑이 얘기가 왜 그렇게 많은지 <전설의 고향>만 봐도 알 것 같다. 어느 외국인이 조선에는 호랑이가 너무 많다고 했다는데 이해가 간다.


호랑이 얘기, 톳째비(도깨비)얘기, 뱀얘기, 닭얘기. 용소얘기, 용과 이무기 얘기.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던 외갓집. 그때 그 밤이 좋았다. 엄마는 친정식구들과 웃을 일만 있었다.

밤에 바깥에 나와 하늘을 봤는데, 별이 쏟아진다는 게 뭔지 눈으로 확인했다. 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별이 쏟아지고 내려오다 못해 지붕밑까지 내 코앞까지 눈처럼 하얗게 쏟아졌다.

엄마 말대로 우리 고향은 하늘아래 첫 동네가 맞았다. 아니 거의 하늘이었다. 하늘나라와 인간 세상의 중간 지역쯤 되는 곳. 강원도 정선. 그곳이 우리 고향. 민담과 설화가 현실과 어우러진 곳. 내 배경. 나는 그런 곳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나는 옛날 얘기를 좋아했던 것이었구나.


엄마가 안반에 밀가루 반죽을 올려 홍두깨로 민다. 반죽이 안반 바깥까지 넓고 둥글게 펼쳐진다. 늘어난 반죽을 반 접고, 또 반 접고, 착착 접어서 깍독깍독 깍독깍독 썬다. 일정하게 자로 잰 듯 썰린다.

안반 위의 예술. 엄마표 칼국수.

엄마의 안반은 호랑이가 지고 갔다. 다시는 안 온다. 다시는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