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절을 돌구멍에 속삭인다
고양이랑 살아 본 적이 있다. 한 일 년 남짓. 조카가 유학 가면서 맡기고 갔다. 나는 개랑만 살아 봤다. 고양이는 만져본 적도 없다. 할퀴고 말 귀도 못 알아듣고 그럴 줄 알았다. 오던 날 바로, 전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조카와 조카 남자 친구와 고양이가 온다고 해서 식탁에 의자도 다섯 개 준비해 뒀다. 자리에 앉았다. 세상에 고양이도 끼어 앉는 것이다. 그것도 제일 작은 의자에. 물론 그 간이 의자가 하나 남아 있기는 했어도. 너무 신기했다. 조카가 돌아가고 고양이만 남았다. 고양이는 처음부터 무릎에 올라왔다. 잘 때가 됐는데 같이 잤다. 아니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차지하고 가로누웠다. 자다가 묵직해서 보니 가슴에 올라타고 있다. 고양이가 깰 까봐 조심스러워서 무거워도 참았다. 뒤척이지도 않았다. 새벽에는 남편한테도 그랬는지 남편도 무거웠다고 했다.
조카와 틈만 나면 카톡을 했다. 스마트폰은 온통 고양이 사진뿐이었다. 동영상은 따로다. 똥도 찍고 감자도 찍고 약 먹는 것도 찍고 자는 거 긁는 거 먹는 거 하품하는 거 뭐든지 순간순간 포착했다. 뭐든지 포토제닉이었다.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다더니, 고양이 세계에 빠져서 오줌소태로 병원까지 갔었다. 세상에 그렇게 자발적 지극 정성을 쏟을 수가 있는 걸까. 처음 쥐돌이가 와서 한 닷새쯤일 때. 나는 하필 작은 방 문 앞에 누워 있었다. 그때 쥐돌이가 오줌을 싸더니 갑자기 뛰었다. 소리를 지르며 달리다가 내 이마를 딛었는지 밟았는지 얼굴을 뭉개며 지나갔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언젠가 할퀴겠지 싶었다. 고양이는 할퀸다. 이게 내 고양이 상식이었다. 이마가 빨개졌다. 나는 사진을 찍어서 여기저기 보여줬다. 다들 나를 비난했다. 왜 고양이 가는 길에 누웠느냐, 왜 고양이 뛰는 걸 방해했느냐. 고양이 길을 막은 게 잘못이라고 했다. 뭐지? 내 얼굴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시딘을 발랐다. 곧 괜찮아졌다.
고양이는 요구하는 게 많았다. 시간도 딱딱 맞춘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 우리를 질책하는 소리. 뭔가 요구하는 소리. 우리는 고양이 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다. 산에 갔다가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고양이는 길고 길게 판소리 창가를 부르는 소리를 냈다. 마치, 베뱅이가~~ 아아아아 하듯이 길게 뺄 때도 있다.
그러면 너무 웃겨서 한 참을 웃었다. 변기에 앉아 있는데 냉큼 무릎에 올라앉는다. 그러면 꼼짝없이 기다렸다. 뭐가 됐든 고양이 위주로 돌아갔다. 남편한테(치매 전이었다) 밤 12시만 되면 왔다. 남편 뒤에 앉아 "이모부우~~~"불렀다. "낚시 놀이 해욨!"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남편은 "어 그래 낚시 놀이 하자고?" 하면서 고양이와 놀아 준다. 고양이는 정신없이 새깃털 장난감을 잡으려 한다. 뒹굴고 거꾸로 처박히며 열정적으로 논다. 조카한테 동영상을 보여 줬다.
"쥐돌이의 화양연화네. 나랑 십 년 살았지만 저런 적은 처음이야."
우리 집은 한 동안 고양이를 위한 집이었다. 캣타워는 기본이고, 고양이한테 나쁘다는 건 다 치웠다. 고양이 변소도 두 개나 놔줬다. 물그릇은 가지가지 다섯 가지로 비치했다. 물도 한 번 먹으면 바로 새 물로 갈아줬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보리싹은 큰 두부판으로 하나 심고, 화분으로 두 개 심어 놨다. 쥐돌이는 야무지게 고 작은 입으로 뜯어먹었다. 조카는, 이모네가 바로 고양이 월드라고 했다.
내가 밥을 먹을 때도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자빠뜨렸다. 내 배 위에 올라가서 꾹꾹이를 한다. 그러면 나는 몸을 내줘야 했다. 이건 무슨 신혼부부 밥 먹다 눈 맞는 것도 아닌데. 고양이가 실컷 하고 나서야 나는 밥을 마저 먹었다. 컴퓨터 할 때 키보드 앞에서 내 손을 베고 잔다. 내 팔을 베고 잔다. 책을 읽으면 책 위에 올라앉아 같이 읽는다.
그러다 코로나 때 조카가 들어오게 되었다. 고양이 물건이 작은 방으로 하나 가득 이었다. 캣타워는 분리하고, 스크래쳐도 몇 개나 되었다. 공기청정기까지 영양제 추르 사료 꼼꼼하게 다 쌌다. 쥐돌이는 갔다.
쥐돌이는 안 가려고 베란다에 숨다가 도망치다가 결국 잡혀서 포대기에 싸여 울면서 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계속 울었다. 우는 소리가 통로를 타고 올라왔다.
한 달 지나서 조카가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이모 쥐돌이 우울증 왔어. 눈도 안 떠."
쥐 돌아 불러도 대답도 없다. 눈을 감고 있다. 이모부가 한 번 불러봐.
남편이 불렀다.
"쥐돌아 쥐~~ 돌"
그때였다.
쥐돌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문으로 간다. 조카 집 현관문을 발로 긁는다.
"이모, 쥐돌이가 이모부가 문밖에 있는 줄 아나 봐"
세상에. 어쩜 저럴 수가 있을까. 말 못 한다 뿐이지. 감정은 너무 섬세했다.
벌써 5년이 지났다. 조카는 말한다. 쥐돌이 인생 15년. 이모집에 살 때가 화양연화였다고.
그럴 리가 있니. 네가 주인이고 너랑 15년을 살고 있는데.
'화양연화'가 뭐길래 고양이도 우울증에 걸리는가.
좋았던 한 시절은 무엇일까.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한 시절.
언니는, 신혼 시절 딱 한 달. 첫 딸 분유 타준 거, 그거 하나로 평생 형부와 산다고 한다.
아니 자기 딸 분유 타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게 그렇게 평생 고마울 일인가?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라고 했던가. 가난해도 내 인생 언제나 화창했던 거 같다. 반짝이는 순간이 많아서 그랬나 보다. 치매 오기 전 남편한테 물어봤었다. 언제가 좋았냐고.
대학 때 풍물패 했을 때, 그리고 신혼시절 옥탑방 살 때라고 했다.
영화 <화양연화> 양조위는 그래서 부럽다. 나 같지 않아서.
가장 좋았던 인생의 한 시절을 돌구멍에 대고 속삭인다. 흙으로 덮고 돌아선다.
발설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아하게. 아무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