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설의 비극

구미호 남편, 하루 만...

by 채송화

구미호가 인간이 되는 시간. 딱 하루 남은 전날밤. 아내는 바느질을 한다. 남편은 새끼를 꼰다. 더없이 정겹고흔연한 일상. 남편은 입술에 침을 바른다. 입이 달싹인다. 일촉즉발. 남편이란 작자가, 기어이 비밀을 발설하고야 만다. 듣고 싶지 않은 말. 해서는 안 되는 말. 하지 않기로 한 말. 석 달 열흘, 신혼의 밤은 참혹하게 끝난다.


비극의 시작은 어느 지점인가? 일상의 질서가 깨질 때. 어느 날 갑자기. 그때부터 시작이다.

한 통의 전화. 한 발의 총성. 한마디 말. 한통의 문자. 얼마든지.

인간의 일상은 견고한가? 풀로 붙인 삶인가?


구미호 이야기는 그 이후가 더 흥미롭다. 깨져버린 일상. 지키지 못한 약속의 대가.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 했던가. 어떻게 수습하고 전개해야 하는가.


"간 빼먹는 거 잠깐이면 돼" 남편은 자기 간을 내주려 한다. 구미호는 남편을 헤치지 않고 떠난다.

이 부부는 막판에 서로 존재의 메커니즘을 이해했던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구미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간을 내주려던 것이다. 구미호 또한 인간의 발설 욕구를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떠났을 것이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말하는 이해의 정의다. 비난하지 말고, 조롱하지 말고, 이해하라. 네 기분, 네 감정 이해해. 그 차원이 아니다. 이 철학적 이해는 존재와 삶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때 해탈한다는 종교적 이해와 통한다. 알든 모르든 구미호 얘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다양한 버전으로 리메이크되는 것이다. 좋은 원곡은 그 어떤 장르로 편곡되어도 좋은 거처럼. 이야기도 그렇다.


왜 인간은 말을 참지 못할까.

철학자 스피노자는 '말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 본성이라고 했다. 그러니 본성을 억누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지독한 고문 앞에서 동료를 배신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고문 중에 상고문이 비밀을 폭로하라는 고문이다.

"말해!"라든지, "불어!"라든지, "대!"라는 대사는,

인간 본성을 억누르는 초인적 억제를 해야만 고문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발설 욕구, 즉 impetus. 이것은 존재를 추동하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이 원동력은 인간의 존재를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욕망 즉 conatus의 한 형태이다. 그러니 발설은 존재를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본성을 지닌 인간 고유의 자연법칙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스피노자는 멈칫했다. "말을 잃은 스페인 시인은 살았다고 볼 수 있나?" 인간의 행동 뿐 아니라 욕구 마저도 선과 면을 다루듯, 기하학적 방법으로 고찰하다가, 감정도 48가지로 분류하고 증명하다가, 음... 스피노자도 치매는 어렵다.


어쨌든, 조금 억지를 써 보자면, 세상은 말로 시작하지 않았나? "빛이 있으라!"

수없이 많은 설화 민담 전설.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이후 쏟아지는 이야기의 출현들.

가장 수다쟁이.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들. 그들이 '작가'다. 예술가다.

예술가의 존재보존 욕구는 표현이다. 이들은 표현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림을 그리든, 노래를 하든, 글을 쓰든 간에. 하여간에. 그러니 말은 가둬두면 안 된다. 브런치에 초단위로 올라오는 글들. 이것이 바로 발설충동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증거다. 장이 열리면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갇혀 있던 말들의 반란에 대한 재미있는 경고를 다룬 옛날 얘기가 바로 <이야기 주머니>다.

어릴 때 엄마한테 들었던 이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얘기가 <오디세이아>에 나와서 놀랐다.

거기도 자루 에피소드가 있다. 자루에는 바람이 들었지만. 주머니든 자루든 그 속에 든 것이 빠져나오려 하고, 빼 내려하고, 그 와중에 모험이 펼쳐지는 것은 유사하다. 그러니 콩쥐의 꽃신이 곧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라는 것도. 구미호 이야기와 똑같은 얘기가 할리우드 b급 영화로 있다는 것도 놀라우면서도 수긍이 가는 것이다.


발설의 형태는 다양하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진실을 알리는 시원함을 주기도 하고.

그야말로 '말 못 해 죽은 귀신' <장화 홍련>도 있다. 말 들어줄 때까지 도전한 귀신 자매는, 말을 하고 잘 들어주고 범인까지 밝혀져 한이 풀린다. 그래서 더더욱 구미호는 '벙어리 냉가슴'처럼 안타까운 발설의 예다. 구미호 남편은 하룻밤을 못 참고 비밀을 누설해 버렸다. 구미호가 인간으로 변용되지 못한 아쉬움이, 긴 여운으로 남는 건 당연하다.


대나무 숲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쳐야만 속이 풀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비밀 누설. 발설은 구원인가 재앙인가. 혀를 어떻게 놀릴 것인가.



펄스의 <난 얘기하고 넌 웃어 주고>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여전히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넌 얘기하고 난 웃고'싶다.


신기했던 경험담을 아내한테 나지막이 얘기해 주는 구미호 남편. 지금 내가 남편한테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다. 남자들이 나이 들면 수다쟁이가 된다고 한다. 언니도 형부가 따라다니면서 떠드는 게 싫다고 한다.

나는 너무나 부럽다. 오죽하면 남편 글 읽는 소리라도 계속 듣고 싶을까.

남편의 치매로, 내 일상은 비극마저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나야말로 하루만...이라도 치매 이전의 남편과 이야기하던 신혼의 밤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