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밥 한 덩이

오월이를 애도하며

by 채송화

압력솥이 달강달강한다. 꺼야 할 때를 감으로 맞춰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다가는 밥이 탄다. 아니나 다를까 탄내가 난다. 타이밍을 놓쳤다. 밥이 탔다. 한 끼 정도씩 나눠 반찬통에 담는다. 냉장고에 넣는다. 며칠 나 혼자 먹는다. 일용할 양식. 나라미. 냉장고에 밥과 김치가 가득. 옛날로 치면 곳간에 쌀이 그득인 걸까.


찬밥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두어 번 씻어 탄기를 뺀다. 탄밥 토렴이다.

'툭'

밥 한 덩이가 떨어졌다. 손 쓸 사이도 없이. 싱크대 개수대에 처박힌다.

'아고! 아까워라.'


쉰 밥 한 덩이 못 먹고 죽은 오월이도 있는데...

백석 시인의 시 <쫓기 달래> 생각이 났다.

책이 있을까? 갑자기 읽고 싶다.


남편 알츠하이머병 진단에, 엉뚱하게도 내 분노의 방향은 책으로 향했었다.

분노의 쓰나미로 화마가 덮친 것처럼, 거실을 가득 채운 책은 다 쓸려 나갔다. 불 탄 자리에 뭐가 남았을까.

그래도 몇 권 있다. 남편이 감춰 준 시집들은 살아남았다. 평소에 내가 보물 1호라고 했던,

김종삼의 <북 치는 소년>그 옆에 백석의 <집게네 네 형제>가 나란히 있다.


야단맞고 쫓겨 난 손주들을 숨겨 주는 할머니처럼. 남편도 잘 그랬다.

나는 평생 간직하는 것도 많지만, 버리기도 잘 버린다. 그러다 "그거 어딨지? 정말 다 버렸나?" 그럴 때마다 남편은 "혹시나 찾을까 봐 내가 다시 가서 찾아다 놨어." 그렇게 내 눈앞에 내밀 때가 많았다.

그러면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좋아하던 나. 그런 나를 보고 더 좋아하던 남편. 그래서 그랬는지 남편은 며칠이나 책을 버릴 때도 몇 번이나 물어봤었다. 조정래든 황석영이든 이문열이든. 임꺽정이든 황만근이든. 러시아든 미국이든 프랑스든. 철학이든 문학이든 그림이든. 장르불문. 사장님이 미쳤어요, 급처분하듯이. 주인여자가 미쳤어요. 그랬다. 그랬는데도 용케 남편 손에 구조된 책들은 우리랑 같이 살고 있었다.


너무나 훤칠하게 잘 생긴 젊은 백석을 한 참 봤다. 젊음이 좋구나. 책장을 넘겼다.

97. 9. 20. '평론보다 이 책 한 권이'. 내 글씨로 쓰여 있다. 세상에. 이쁘기도 하지. 나의 이십 대.

이렇게 이뻤구나. 빛바랜 하늘색 글씨를 한 참 보고 나서.


<쫓기 달래>를 읽었다.

쉰 밥 한 덩이 다 먹지도 못하고, 매 맞고 쫓겨난 오월이. 엄마 찾으러 나갔다가 얼어 죽은 오월이.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월이가 불쌍해서 가슴 아팠다. 한참을 울었다.

죽은 자리에서 이듬해 달래가 피었다는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한테 중요하지 않다.

<강아지똥>이 민들레를 껴안고 꽃을 피웠다는 것도 이 대목에는 끼어들 수 없다.


찬밥과 김치를 얻으러 다니다 죽었다는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또 다른 오월이가 연달아 떠 오른다.

세 모녀, 두 모자, 두 자매. 사건으로. 뉴스 꼭지로. 짧게나마. 지금도 너무나 많은 오월이들이 여전히 있다.

밥 한 덩이 먹을 돈이 없어 죽어 가고 있다. 두 부부. '다음에 내 차례'는 언제 일까?


컴퓨터도 두 대. 노트북도 두 대. 스마트 폰도 부부 각각 하나씩. 나는 조카들이 쓰다 버린걸 두 대나 이어 쓰고 있다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세탁기도 냉장고도 김치냉장고 있다. 진열상품으로 최저가로 샀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있다는 것. 그런데 나는 가난하단다. 냉장고에 쌀밥과 김치가 그득한데도, 생계형 기초수급대상자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나라미를 받아먹고 있다.


그 와중에도 나라미가 의외로 쌀 맛이 좋다며 김치와 먹고 있다. 나는 그래도 밥과 김치를 먹을 수 있다.

당장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임대아파트 보증금은 사천만 원이다. 천오백은 상환할 수 있단다. 집을 떠 받치고 있는 밑엣 돈을 빼가며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한에서 할 수 있는 만큼씩. 허물어지는 집에서 죽지는 않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콘크리트 유토피아>처럼 붕괴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돌무더기에서도 사는 사람은 산다. 나는 살 것이다. 아마 굶어 죽겠냐. "그렇게는 두지 않아요" 구청 복지과 담당자가 말했다. <바이러스>에 걸린 옥택선(배두나)이 이균 박사(김윤식)를 믿었듯이. 나도 믿을 것이다. 구청 공무원의 말을.


나라미로 지은 쌀밥. 옛날 생각으로 정부미가 맛이 있을까 싶었다. 맛있다.


"언니 쌀이 맛있어 좀 줄까?"

"나는 찹쌀만 먹어."

집에서 거의 밥 먹을 일이 없단다. 참 그렇지. 언니네는 부자였지. 집에 붙어 있는 날 없이 나다니지.


"오빠 쌀이 맛있어 좀 줄까?"

"아빠는 최고급 쌀 아니면 안 먹어."

조카가 대신 대답한다. MZ세대 조카도 탄수화물은 끊었단다.

남편도 단백질 위주의 케톤식이 상차림이다.


'이밥에 고깃국'은 이제 옛말이란다. 쌀은 인기가 없단다. 과연 그럴까?


오늘따라 쌀밥에 김치가 맛있다.

쌀밥에 김치를 얻으러 다니다 죽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그 뉴스가 지금도 생생하다.

여전히 오월이는 있다. 세 모녀 두 모녀 두 부자 여전히 있다.

"사나운 주인이 마소처럼 부리"고

"배 고프고 추워서 우는"


오월이는 작은 종

그 엄마는 큰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