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 E4 유전자, 침묵의 역설
치매 게시판에 20대 딸이라며 글이 올라왔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다. 아버지의 치매 사실을 알려야 할까. 참고로 엄마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심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언한다. 본인의 인생을 살라고. 딸은 댓글에 힘입어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는, "그럼 나는 어떡해?" 혼자 아빠 돌보는 거 못 하겠다고 했단다.
내 20대가 오버랩됐다. 아버지도 그랬다. "그럼 제사는 어떡하나."
엄마 돌아가시고, 나는 졸지에 많은 역할을 떠맡았다. 이혼한 오빠도 홀아비, 엄마 돌아가셨으니 아버지도 홀아비, 어린 두 조카. 나는 엄마가 하던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도 했고, 두 홀아비 내조. 엄마 없는 이제는 할머니까지 없는 조카도 돌봐야 했다. 아버지와 오빠가 출근하고 2학년 4학년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그때부터 나는 혼자 울었다. 지금은 누구보다 부자로 살지만, 언니는 그때 재정적으로 최악이었다.
엄마 돌아가셨다고 내가 전화했을 때, 언니는 딱 오천 원 있었다고 한다. 택시를 타야 하나 갈등했었다고 한다. 가난은 그런 거라고 했다. 멀리 사는 작은 오빠는 나한테 전화해서 "니가 잘해야 돼." 그랬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오빠가 알기나 해!" 오빠는 하극상이라며 화를 냈다. 장가가기 전까지 나를 업어 주던 오빠였다.
서운하고 서러웠다. 엄마 없으면 개 밥에 도토리라더니 내가 그런가 싶었다.
엄마 장례 치를 때 엄청난 강원도 친척들이 우리 집에 와서 사흘을 지냈다. 그 뒤치다꺼리를 내가 다 했다.
할머니가 있다 해도 할머니일 뿐. 언니가 있다 해도 출가외인. 그게 중요하다기보다, 언니 상황은 당시 집이 넘어가네 마네 했었다. 게다가 전날, 하필 언니가 집에 왔다. 하필, 엄마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 따지고 갔다. 다음날 엄마가 쓰러졌다. 할아버지 생신 준비로 콩을 갈다 말고. 언니는 언니대로 괴로움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큰며느리는 없고, 작은 며느리는 갑상선이 약하다고 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내가 안주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작은 오빠는 올케언니 일 시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그랬다.
며느리는 제사 지내면 손님처럼 먹고 갔다. 그래도 와 준 게 어디냐며 엄마는 "아뭇 소리도 하지 마라." 했다. "즈끼리 잘 살면 된다." 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엄마랑 둘이 했다. 제사 설거지도 내가 다 했다. 젊었으니까 힘든 줄 모르고 했다. 작은 오빠네도 언니네도 모두 '즈끼리' 잘 산다. 철옹성 같은 완벽한 4인가족이다.
내 이십 대는 엄마랑 살 때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집사 또는 스페어타이어 같기도 했다. 언니 오빠들과 터울이 커서 모두 결혼해서 나가고 나만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러다 큰오빠가 이혼하고 들어왔다. 두 살 터울의 '쥐 같은' 오누이를 데리고. 막내는 돌을 넘길까 말까. 큰애도 세 살이라기보다는 아직은 개월수로 말할, 나이라고 하기도 덜 여물었을 때. 이십 대가 되면서 나는 엄마와 함께 조카를 돌봤다. 엄마 떨어진 조카들은 온 식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그럼에도 엄마가 없다는 근원적 결핍은 누구도 채울 수 없는 "슬븐 존재"였다.
두 아이들이 수두에 걸렸다. 아이들 온몸에 카라드라민을 발랐다. 식구들이 돌아가며 부채를 부치고, 입으로 후후 바람을 불어줬다. 한 아이씩 번갈아 업고 소아과 갔을 때 나는 울었다. 의사는 "아이고 아가씨야, 괜찮아 괜찮아" 나까지 달래 가며 진료했었다. 엄마, 아버지. 언니, 오빠. 식구들은 내 손을 많이 빌렸다.
내가 멀리 뛸까 봐 엄마 아버지는 늘 감시했다. 비디오 가게 해보겠다고 할 때도, 미술학원 차리겠다고 할 때도 엄마는 누워서 시위했다. 내가 신춘문예 당선 되자, 엄마는 마음을 놓았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까. 엄마는 내 등단을 즐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내가 서른이 되기도 전에. 엄마가 죽는 바람에 나도 즐기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안방에서 엄마가 나올 것 같았다. 부엌에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급기야 산소 있는 마을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아침마다 밤마다 울었다. 할머니와 자던 조카들은 할머니 대신 고모인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두 애들을 한쪽씩 끼고 잤다. 나도 파고 들 품이 필요했다. 연애하던 남편과 헤어졌었는데, 내가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남편이 그렇게 나한테 왔다. 나는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때 아버지가 그랬다. "제사 지내놓고 가라"
제사 지내놓고 도망치듯 맨 몸으로 나갔다. 그렇게 옥탑방으로 피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오빠 애들 둘, 언니 애들 둘이 득달같이 우리 옥탑방으로 따라붙었다. 토요일에 와서 자고 일요일에 갔다. 방학 때는 와서 살았다. 옥탑방에서 일 년을 채 못 살고 다시 친정으로 갔다. 따로 사는 건 말 뿐이었다. 따로 산다 해도 "고모 언제 와?" 애가 타게 나를 찾는 조카들. 한 날은 추운 늦가을이었다. 친정에 들렀다, 가려고 일어났다. 막내가 맨발로 어느새 마당까지 따라 나왔다. 남편이 업었다. 남편은 내 조카애를 업고 발 시리다며 주머니에 작은 발을 넣었다. 손으로 꼭 쥐고 걸었다. 큰애는 걸리고 작은애는 업고. 그렇게 옥탑방까지 걸어갔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다시 친정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월세도 전기세도 수도세도 다 받았다. 애들은 우리와 2층에서 살았다. 아래층은 노인들이. 2층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살았다. 큰아이 고등학교 갈 때까지 살았다. 여전히 우리 친정식구들은 지금까지 한 동네 산다.
내가 나갔을 때 아버지는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재혼해서 나갔다. 내 역할은 할머니가 몇 년 대신했다. 우리 집은 언제나 조카들 넷이 뭉쳐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조카 넷이 뭉쳐서 따라붙었다. 개들도 같이 따라붙었다. 가끔 언니 시동생 애들 둘까지 도합 여섯이 북적였다. 뿐인가 언니네 흰둥이, 우리 집 퍼짐이 똘똘이부부, 퍼짐이 똘똘이가 낳은 뭉툭이 콩점이 까지. 애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잠깐 잠잠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쨌든 친정붙이는 내 한쪽 발을 붙잡고 있다.
나는 게시판의 그 20대 딸의 결혼보다 오히려 '치매'라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다. 남편과 이십 년 넘게 살다가 남편이 치매가 왔다. 결혼 내내 치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집내력은 치매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무를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그때 남편 집안 내력에 치매 유전자가 있다면 결혼했을까? 했을 것이다. 왜냐, 이십 대의 나는 무식하고 무모했으니까. 지금 만약 내 조카가 결혼할 집안에 치매 유전자가 있다면 나는 말릴 것 같다.
젊을 때는 마흔, 쉰, 예순이 너무너무 멀다. 너무 멀어서 가늠이 안된다. 하지만 세월은 빠르다. 쏜 화살이다.
쏜 화살 위에 올라타고 가는 게 세월이다. 당장 닥치게 된다. 치매로 인한 비극이.
영화 <가타카>에서 에단 호크는 유전적 약점을 안고 태어났지만, 신체의 한계에 도전한다. 사회적 운명을 탈출하기 위해 신분 도용까지 한다. 정체를 감추려 신체조직까지 조작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당시에는 유전자 조작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인간을 믿었다. 지금은 아니다. 유전을 믿는다. 모든 건 유전이다. 기계인간도 원하는 마당에, 유전자를 조작해서 치매를 고칠 수 있다면 뭔들 못하랴. 막상 할 수 있을까는 둘째 문제다. 아이러니하게 나와 달리 남편은 도전한다. 치매유전자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편이야 말로 에단 호크다. 치매 관련 책을 읽으며, 뇌 그림을 따라 그리며, 연신 아하 아하 그렇군 그렇구나 한다. 치매 환자가.
그런데 정작 남편은. 남편은 좋았을까. 처가 식구들에 둘러 싸인 남편 말이다. 남편은 졸지에 우리 집 겐지가 되었다. 동쪽에 아픈 사람 있으면 가서 돌봐주고 서쪽에 송사 나면 해결해 주는, 일본의 대표 동화작가.
<비에도 바람에도 지지 않는> 미야자와 겐지. 나는 집사 역할 스페어타이어 역할이 버거웠다. 그래서 내 보조를 들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끔찍한 결혼의 반전이 이렇게 드러나다니. 남편은 모를 것이다.
이 비밀을. 나는 구미호 남편이 아니다. 그런 발설은 하지 않을 것이다.
치매 게시판의 그 20대 딸이 어찌어찌해서 결혼했다 치자. 그 남자는? 그다음은?
두 살 때부터 나한테 '고모엄마'라던 조카가 놀다가, 가면서 말했다.
"아이고 오늘은 또 뭘로 아빠 밥을 차려 주나."
할머니가, 엄마가, 여동생이, 딸이 대대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유전이다.
엄마도 할머니도 모두 말했다. "아이고 야야, 그러니 우특하나. 눈으로 뻔히 보이는 것을"
눈으로 보이는 소풍. 눈으로 보이는 운동회. 눈으로 보이는 수능까지. 대학에 가서까지. 지금까지.
눈이 있으니 보이는 것이다. 귀가 있으니 들리는 것이다. 유전도 관성이다. 늘 하던 대로. 관성의 법칙.
세상 무서운 게 유전이다. 유전이야 말로 공포다. 영화 <Hereditary (유전)> 이 괜히 공포영화가 아닌 것이다. 가족 내 대물림되는 숙명과 억압구조. 이것이 바로, 내가 그렇게 누누이 주장하는, 결혼은 빙산의 일각 아래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유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