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설의 불가능성, 말할 수 없을 때의 침묵
하정우 영화 <추격자> 뒷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 슈퍼 아줌마 사건 현장신. 거기에 원래는 여자 형사가 잠복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형사도 너무나 무서워 가지 못하는 연출도 했었다고 한다.
나는 이런 경험을 치매 게시판에서 종종 본다. 이 게시판의 본질은 치매 환자를 사랑하자이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돌봄의 정보를 공유한다. 그런데 그 돌봄이라는 것이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다. 사랑의 모순은 쉴 새 없이 발고된다. 사랑만으로 되는 것이 있을까?
사랑만으로 살 수 없다. 결혼할 때 나는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결혼은 현실이라고. 그런데 지금도 그렇다.
돌봄도 현실이다. 사랑만으로는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게시판은 '심정토로의 장'으로 무대가 바뀐다.
어느 날은 누가 누가 더 힘든지 겨루는 장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던지.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간증이랄까 사례발표랄까. 앞 선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 노하우도 배운다. 그러다, 한 사람이 간병지옥 체험을 올린다. 댓글이 달린다. 토닥이고 다독이고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그러면서 다시금 사랑을 다짐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줄줄이 한 마디씩 한다. 그런 날이 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사연이 우후죽순이다. 왕중왕전. 그러다 그날의 진정한 끝판왕이 등장한다. 댓글이 없다. 감히. 아무도.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해줄 말도. 또 들을 말도 없을 것이다.
고통에도 서열이 있다.
십 년 넘게 혼자 아버지 암 간병 십 년, 엄마 파킨슨 십일 년째. 형제들은 모두 무관심. 남편도 아프다. 그래서 남편은 다른 사람한테 관심 둘 여력이 없다. 혼자 간병한 세월. 본인도 병을 얻었다. 어깨 파열. 자궁 근종. 갑상선암까지. 체력이 회복이 안된다고 한다. 답답하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조언하고 위로하고 했던 사람들은 감히 나서지 못한다.
고통의 만렙을 찍은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위로도 경험치가 있어야 해 줄 텐데. 경험하지 않은 전혀 다른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침묵뿐이다.
돌봄과 고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 집 현장. 그 집은 우리 모두의 집이 된다. 모두 다 어느 만큼 아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경험치가 있어야 해 줄 수 있는 위로는 따로 있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전혀 다른 어려운 문제. 하지만 곧 나한테도 닥칠지 모를 일. 일시정지가 일어나는 순간. 사랑의 다짐은 슬그머니 맨 뒤로 빠진다.
그는 어떻게 했을까? 아픈 몸을 이끌고 어머니를 먼저 요양원으로 모셨을까? 제일 먼저 급한 갑상선 수술을 하러 갔을까?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누워 있을까? 지금까지 어떻게 십 년을 버텨왔을까?
무쇠 같은 그이는, 후기를 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