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피로에 부서진다

돌봄의 상대성

by 채송화

사랑은 피로에 부서진다.

기억 못 하는 사람보다, 기억해야 하는 내가 더 괴로울 때가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은 퇴근할 때 아내한테 전화한다. "뭐 사갈까?"

남편도 늘 그랬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 일상이 깨질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치매로.


그러나, 일상은 지속된다. 깨진 채로. 깨져도. 깨진다고 일상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고치고 다듬고 꿰매면서 죽을 때까지는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습관도 기억이다. 기억의 두 종류 가운데 몸의 기억이랄까.

헬스 끝나고 오면서, 피아노 끝나고 오면서. 남편은 가끔 전화한다. 뭐 사갈 거 있나?

그래서 나도 전화한다. 올 때 뭐뭐 사다 달라. 상세하게 주문한다.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기억을 유지하려면 생활습관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치매 상태도 유지가 된다. 기억의 연쇄부도가 나는 것도 치매고, 기억의 연쇄 부도를 막는 것도 치매 유지다. 치매는 뭐 이리 모순덩어린지. 베타아밀로이드니 타우단백질이니 뭉친 덩어리가 쌓인 찌꺼기. 그것이 이렇게 모순을 유발하는가 보다.


나는 상세하게 주문한다. 피아노 학원 건물 문구사에 들러 0.7미리 파란 볼펜 한 자루. 헬스장 건물 1층 마트에서 꿀꽈배기. 꿀짱구 아니고. 오다가 주민센터 맞은편 신호등 건너서 교회 지나서 김밥집 옆 수선집. 거기서 바지 줄인 거 찾아오기. 상추도 한 장씩 흐르는 물에 씻기. 오이지도 최대한 얇게 썰어 '꼬오옥' 쥐어짜기.

칼질, 설거지, 청소... 따위의 살림 전반 모두 남편이 하도록 한다. 어설프고 답답해도 기다린다. 내가 다시 하더라도 남편이 하게끔 한다. 남편이 전혀 손도 못 대는 건 먹을거리 준비다. 자기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그거 하나만큼은 손 하나 까딱 하지 않는다.

찾았다. 내 사랑이 부서지는 부분.


칠월은 너무 더웠다. 먹을거리 준비는 아침에 덥기 전에 재빨리 준비해야 한다. 남편이 먼저 산에 가면 그때 후다닥 해야 한다. 계란 삶고 연어 찌고 고기 굽고 냉동 블루베리도 씻어놔야 녹는다. 산에 갔다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한다. 또 헬스 갔다 와도 바로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단백질을 바로 먹을 수 있게. 피아노 갔다 와도 마찬가지다. '삼식이세끼' 미움받을 만하다. 그래도 설거지는 남편이 하잖아. 청소도 남편이 하잖아. 남편이 더 많이 뭔가를 하잖아. 내가 나를 다독인다. 그런데도 왜 힘이 드는 걸까. 챗지피티한테 물어봤다.

내가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란다. 계획을 해야 하고. 또 밥상 차리는 게 돌봄의 상징이라나.

그러면서 현실적인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다.


돌봄은 상대적이다. 감기처럼 코로나처럼. 약하면 약한 대로 심하면 심한 대로. 딱 그만큼이다.

착한 치매는 수월하고 악성 치매는 힘든 거다. 보호자가 할 만하다 느끼면 그건 보호자가 잘해서가 아니다. 치매 환자가 수월한 대상이라 그렇다. 보호자가 죽을 만큼 힘들다면 그건 치매 환자도 그만큼 힘겨운 상태라서 그런 거다.


큰오빠 애들 둘 키울 때, 작은 애는 순했다. 애기가 순하면 키우기 수월하다.

잘 먹고. 쌔근쌔근 잘 자고. 서른이 넘었어도, 애기 때를 생각하면 그렇게 귀여운 아기는 다시는 없다 싶다.

그런데 큰 애는 힘들었다. 한 열명을 동시에 보는 것처럼 애가 부산스러웠다. 지금은 오로지 내편이다. 식구들이 다 같이 있어도 꼭 내 옆에 붙어 있다. 어릴 때도 그러더니 내내 그렇다. 내가 울면 나를 안아준다.


사랑이란 참 상대적이다. 돌봄은 더 그렇다. 착한 치매가 있다. 순한 애기를 보듯 수월하다. 보호자도 힘들 것도 없다. 하지만 나쁜 치매가 더 많다. 보호자는 모든 게 노출된 환경에 맨몸으로 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치매 게시판에 치매를 미화하지 말라고 원성이 자자하다. 피로에 휩싸인 사람들의, 사랑이 부서지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