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 줄이 동아줄이 되어

기쁨의 노벨레: 구원의 글쓰기

by 채송화

내 손이 내 딸이다. 이 말은 causa sui. '자기 원인'이라는 멋없는 철학개념에 잘 들어맞는 비유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내가 이렇게 끈질긴 생명력의 소유자였나 싶다.

브런치에 글을 쓴 지 두 달이 넘어 가나보다. 날마다 글을 쓰고 글을 올리고 있다. 글 한 줄이 동아줄이 되어 나를 바깥으로 끄집어 올렸나 보다. 살아 보겠다고 허공에 손을 뻗었고 브런치가 덥석 잡아 줬다.

덕분에 나는 '글 쓰는 여자'로도 살아 보고 있다.


남편의 치매로 마음은 지옥이었다. 양파 한 뿌리를 붙잡고 마음의 지옥을 탈출하는 중인 걸까. 내 글 한 줄이 구원의 양파 한 뿌리가 될 것인가. 그렇다면 은총의 힘을 믿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잣대로 잴 수 없는 것. 신의 은총은 양파 한 뿌리에, 지옥에 떨어진 인간이 모두 매달려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잣대로 양파 한 뿌리에 매달린 노파는, 발목을 붙잡고 따라붙는 인간들을 떨어뜨리려 버둥대다 같이 떨어진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떤 마음의 지옥을 경험했기에 그런 글을 썼을까. 하긴, 총살 직전에 살아났으니. 지옥에 갔다 온 건 맞다. 그 경험이 구원이 되었나 보다. 그래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튼튼한 동아줄이 작가의 내부에서 나왔나 보다. 문학의 힘. 전 세계 독자들이 지금까지 그 줄에 달라붙어도 끄떡없다. 문학의 은총이다.


어떤 날은 양파 한 뿌리를 붙잡고 올라가는 기분은 이런 걸까 싶을 때가 있다. 마음의 지옥을 탈출하고 있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누가 잡아 주는 걸까. 무엇이 나를 끌어올려 주고 있는 걸까. 내 지옥 같은 마음을 쏟아냈을 뿐인데. 글 한 줄이 튼튼한 동아줄이 되어 나를 바깥으로 끌어올려 주고 있다. 내 몸에서 나온 내 줄이다.


하지만 어떤 날은 심하게 흔들린다. 나는 어느 쪽일까.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마음의 지옥을 벗어나 기쁨의 극한까지 밀어붙일 저력이 있는가? 내 글 한 줄이 나를 끌어낼 튼튼한 동아줄이 되고 있는 걸까. 해보고 싶다. 시도하고 도전하고 싶어진다. 기쁨의 극한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거기에 뭐가 있을까. 지복의 상태. 영원한 베아티투도 Beatitudo가 과연 있을까.


나도 '운명애 Amor fati'다. 지지 않을 것이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아. 치매에도 지지 않을 것이다.

우는 건 우는 거고. 아픈 건 아픈 거고. 걷는 건 걷는 거다.

글은 늘 마무리가 힘들다. 마무리 매듭. 잘 맺고 싶다.

내 몸에서 나온 내 줄을 타고, 삶의 마지막 회를 기쁨의 서사로 끝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