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원인의 힘으로 causa sui
말라무드의 <수선공>에서, 야코프는 어느 날 스피노자 책을 샀다. 한 달 치 월급을 다 털어 샀다.
그리고 읽었다. "돌풍이 등을 떠밀듯이" 스피노자에 빠져 들었다.
얼마나 감명받았으면, 들뢰즈가 애용하던 문구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현실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극적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좀 믿기 어려운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연극이 좋아서 무작정 대학로에 간다는 사람의 이야기. 한 시간이나 걸어서 간다고 했다.
버스비가 없어서란다. 점심값도 없단다. 그 힘은 어디서 나는 걸까?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옛날에는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때다. 그때가 벌써 옛날 이라니. 내 신혼 시절이다.
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같이 문예창작을 배우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대여섯 살 된 딸을 혼자 키웠다.
신혼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편이 일찍 죽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생활력이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낮에는 슈퍼에서 일했다. 과일도 팔고 신발도 팔고 대중없었다.
밤에는 대리 운전도 했다. 프라이드를 중고로 싸게 샀다며 타고 다녔다. 시간을 촘촘하게 쪼개서 잘도 썼다. 공부는 못했다. 그래도 늘 시를 썼다. 시인이 될 거라고 했다. 좋아하는 시인 언니를 한 사람 소개해준다며 같이 보자고 했다. 시인 언니는 이혼을 했다고 한다. 시인 언니는 그 친구보다 더 억세 보였다.
그 친구는 시인언니를 뭐랄까.. 자기의 자부심으로 여겼달까. 또 같은 나이 남자도 소개해 주었다.
그 남자는 결혼했다고 한다. 그 남자도 시를 쓴다고 했다. 생계는 와이프가 공장 다니면서 번다고 했다.
좀 어이가 없었다. 자기는 여자들하고 시가 어쩌고 문학이 어쩌고 떠들고. 그 시간 와이프는 공장 다니면서 일을 한다고?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도 그렇지. 저런 남자 뭐를 보고. 욕을 하다 보니. 역할만 바뀌었지 나와 남편 얘기였다. 남편은 돈 벌고 나는 글 씁네 어쩌네 철학합네 어쩌네, 긴 시간 공부한다고 돌아다녔다.
이건 뭐 잘하는 짓인가.
어느 여름날. 그 친구가, 깨끗이 씻어 말린 자두씨를 선물로 줬다.
나는 그때 살구씨나 매실씨나 자두씨를 모아 베갯속을 채우는데 재미가 들린 상태였다.
그걸 본 그 친구가 가져온 것이다. 슈퍼에 자두가 물러터져서 버렸다고. 내 생각이 나서 씻어 말려 왔다고.
늘 우리 집에 와서 밥 얻어먹고 애 봐주고 하는데 줄 것도 없다면서 준 자두 씨.
나는 그 선물이 오래도록 마음에 들었다. 그 친구의 마음도 아름다웠다. 역시 시 쓰는 친구는 다르구나.
그 친구와의 시절 인연이 끝났다. 몇 년 전 지방뉴스에서 그 친구가 인터뷰하는 걸 우연히 봤다.
부녀회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씩씩했다. 그때도 발이 넓더니, 나이 들면서 더 넓어졌나 보다.
닭공장 다니는 남자와 재혼했다더니, 시골서 잘 살고 있었나 보다. 아직도 시를 쓰고 있겠지. 분명.
<허생전> 이던가. 비가 오는데 널어놓은 보리쌀도 걷지 않고 책만 보는 서생. 아내는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그런 위인들이 도대체 뭐가 잘나서 무슨 배짱으로 글 씁네 뭐 저럴까.
그 친구도 욕을 먹었을까. 시를 씁네 어쩌네.
그런데 아니다. 예술가 '기질'이 있는 사람은 이러지 않으면 못 살아나간다.
<수선공>의 야코프는 말했다.
" 우리는 마치 요술쟁이 빗자루를 타게 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는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가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외부원인이 아니라 내부원인으로 살려니 가난이,
오히려 비켜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