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꽃이 될까
앉은자리에서 살기로 한다.
높이 뛰지도 말고. 멀리 가지도 말고. 대신 깊어 지자. 앉은뱅이 꽃이 되어 깊이 뿌리박으며 살기로 하자.
아픔에도 때가 있고 고통에도 그릇이 있다.
살갗만 스쳐도 아프다는 통풍이 신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정도 그럴 때가 있다. 사소한 잔소리 하나에도 감정이 베일 듯 아플 때가 있다.
감정은 어쩌면, 가장 약해질 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운가 보다.
정신이 뭉쳐지지 않는 가루눈처럼 속절없이 흩어질 때가 있다.
계속 알아차려야 한다. 얼어 죽지 않으려 자기 뺨을 치며 정신을 다잡듯이,
헤밍웨이처럼 나도 우아하게 압박해 본다.
일방통행으로 들이닥친 감정이 도로 나가지 못하게 가둬두자.
돌도 씹어 삼킬 청춘처럼.
내 안에 들어온 감정을 왕성하게 소화시켜 보자.
고통에 휩싸이지도 말고, 내 마음 모두 고통한테 갖다 바치지도 말고,
고통을 발아래 두고 깔볼 것도 없이.
해체될 놈은 해체되고
녹을 놈은 녹고
승화될 놈은 승화되고
변용될 놈은 변용되게
놔두자. 저 혼자 날뛰다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놔둬보자.
나를 흔드는 외부원인 남편.
남편이 이번에는 화구가방을 잃어버리고 왔다. 일 저지르는 남편, 해결을 도모하는 나. 화가 났다.
억만장자라면 잃어버리면 또 사면된다. 개인 수행비서가 있어서 남편의 모든 활동에 동행한다?
그렇다면 나는 화가 날 까닭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기초생활수급가정이다.
내 건강을 위해, 화의 에너지를 재빨리 돌려야 한다. 화의 시스템을 재정립해야 한다.
잃어버린 화구통 값은 '치매 돌봄 관리비용'이라 정리한다.
화의 반응을 재설계한다. 모든 것은 뇌의 놀음이다.
같은 주제로 나도 글을 쓰고, 남편도 글을 쓴다.
나의 해탈 수행 시스템은 글쓰기인가 보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말하는 수동에서 능동으로의 이행이라는 것이겠지.
나의 내부가 한결 잠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