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한 켤레의 시, 곽재구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 번 수습되고
조카 결혼식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아버지가 나를 부른다.
"아이고 야야, 사우 신 좀 사야겠다."
그야말로 뒤축이 떨어져 건성건성 붙어 있다.
아니 얼마 신지도 않은 건데 왜 저러지?
어디 결혼식에라도 가게 되면 구두 한 켤레쯤은 있어야 한다. 남편도 구두 딱 한 켤레 모셔 뒀었다.
남편은 몇 년 만에 구두를 꺼내 신었다. 새신도 낡는다. 신고 안 신고 상관없다. 세월 가면 늙는다.
오로지 하나만. 마르고 닳도록. 사람이든 물건이든. 이것이 남편의 정체성이다.
남편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있다. 그것이 치매다. 신발도 그랬다.
남편도 구두도 황혼이다. 남편도 뒤축을 몇 번이나 갈아가며 고쳐가며 살았다.
소처럼 성실하게 알뜰살뜰 돈 벌어 마누라 옷 사주고 공부시켜 주고 신발 사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처조카들까지. 그 어떤 말 한마디 얹지 않고 살아준 남편이다. 귀 먼 남편이. 치매가 진행되는 줄도 모르면서 충실하고 성실하게. 아니 절실하게 살아왔다.
그 몸에 밴 습관이 지금 남편을, 그리고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
구두 한 켤레로 버텨 온 남편 인생. 환갑에 찾아온 치매.
그나마 한 켤레 구두도 없다. 이제 맨발이다. 남편은 이제 구두조차 필요 없다. 맨발로 걷는다. 마지막 보루다.
맨발 뒤꿈치에서 산소가 혈관을 타고 뇌까지 도달하도록, 날마다 걷는다.
치매에 맨발 걷기가 좋다니 그 지푸라기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것이 튼튼한 동아줄이 되기를 바라며.
남편은 언젠가 방정환의 동화 <만년샤쓰>를 읽으며, 나네 나야. 했었다.
만년샤쓰. 만년 구두. 내 남편. 나한테 빠져, 간 빼 먹히는 정도가 아니라 뇌까지 빼 먹히며 살았구나.
남편의 발바닥에도 분명
고향의 저문 강물 소리가 묻어 있겠지.
귀 먼 남편한테도 가끔은
그 소리가 들리겠지.
구두 한 켤레의 사나이는 오늘도 시를 왼다.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한다.
취미가 아닌, 성실함 혹은 절실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