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며

자화상, 유안진

by 채송화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한다. 감독이 컷을 외친다. 이후 몰입했던 감정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나 이해가 간다. 내가 배우라면 나는 정말이지 감정이입으로 힘들 것 같다. 특히 어두운 작품일수록.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쓰고 나서도 그렇다. 장르에 따라 다를 테지. 가볍고 재밌는 작품이면, 연기가 오히려 힐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도 그런 것 같다. 어떤 것은 예쁘고 편안해서 흡족한 미소로 충만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쓰고 나면 드러눕는다. 심연. 내면. 깊은 곳. 들어갔다 나오면 잠수병으로 죽기도 한다던데. 죽도록 흠씬 두드려 맞고 뻗은 권투선수처럼. 그럴 때가 있다. 누구도 아니다. 내가 나한테 얻어맞는 것이다.

내 손이 내 딸일 때도 있고, 내 발등 내가 찍을 때도 있다. 비밀도 내 입에서 먼저. 잘못된 원인도 따져 보면 모두 출발은 나로부터.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싶은 그런 내 얘기일수록 힘들다. 꺼내기도 힘들고. 하면서도 힘들고. 하고 나서도 힘들다. 심지어 듣는 사람은 더 힘들다. 한동안 무겁게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하지 말아야 할까. 그건 아니다. 일그러져 가는 자신의 마지막까지 그림으로 그린 화가도 있지 않은가. 예술의 승화는 그런 것이다. 알츠하이머 화가. 윌리엄 어터몰렌. 마주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화상이다.

그것이 자화상의 본질이다. 윤동주도 서정주도 유안진도 자화상을 노래했다.

하지만, 윌리엄 어터몰렌의 자화상이 보여 주는 그림.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나와 남편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예술은 어떤 형태로든 위로를 준다. 공감을 준다. 인간이 인간한테. 살아본 사람이 살아갈 사람한테.

그래서 또 일어난다. 일어날 수 있는 힘이다.

남편의 시낭송은 나한테 또 다른 윌리엄 어터몰렌이다. 그림이든 시낭송이든. 인간 존엄의 길을 걷는 건 같다.

예술이 구원이긴 한가 보다.


오늘도 남편의 등을 따라간다.

오늘치 남편의 일과. 오늘치 내 일과.

오늘치 남편의 맨발. 뒤꿈치만 따라가련다.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돌아보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