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확장

기억을 잃은 스페인 시인, 기억을 붙잡는 자화상의 화가

by 채송화

『변신』 어느 날 벌레가 된 남자. 그레고르 잠자. 그는 변했을 뿐이다. 정체성을 잃은 것이 아니다.

핏덩이로 태어난 인간은 날마다 변신한다. 하지만 정체성을 잃지는 않는다.


정체성의 핵심은 기억이다. 언어를 잃고 논리를 잃고 이성을 잃고 급기야 의사소통마저 잃는다. 그것이 치매다. 하지만, 벌레가 된 남자는 겉모습이 변했을 뿐이다. 그는 소위 '눈치가 빤하다'. 그의 정체성은 여전한 것이다. 그러니 인식의 철학자인 스피노자가 물었던 것이다. 기억을 잃은 스페인 시인을 살았다고 볼 수 있는지. 그 시인은 기억을 잃음과 동시에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다. 정체성을 잃으면 인간성을 잃는 것이 된다.


삶의 주제는 크게 보면 한 가지이다. 즉 달라지는 나. 달라진다는 것은 덧붙여지는 것이다. 기억이 불어나는 것이다. <길가메시>부터 <오디세우스>까지. 수동에서 능동으로 이행하라는 스피노자. 낙타에서 사자로 그리고 아이로 변용하라는 니체까지. 최초의 서사시에서 현대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줄곧 고찰되고 있다.

길가메시로 대변되는 인간의 한계. 경험을 축적하는 오디세우스. 자기 극복의 은유를 보여주는 니체.

인류의 오래된 서사와 철학은 모두 인간의 변용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치매는 어떤가? 정체성의 상실인가? 아니다. 오히려 정체성의 확장이자 새로운 탄생으로 보고 싶다.

알츠하이머 이후 남편이 알게 된 작가, 웬디 미첼.《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과 《내가 알던 그 사람》의 저자이다. 알츠하이머병 10년 차인 그녀는, 자기 정체성을 놓지 않고 있다. 남편의 글쓰기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한국의 '웬디 미첼'이 되겠다며 남편은 하루하루 글을 쓰고 있다. 또, 치매에 걸렸지만 죽기 전까지 자화상을 그렸던, 화가 윌리엄 어터몰렌. 그들이 끝내 놓지 않는 한 가지, 정체성. 모두, 이성의 마지 노선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나는 남편을 보며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치매를 진단받으면 이전의 정체성은 사라진다. 한 '사회적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 '치매환자'라는 다른 이름이 들어선다. 보호자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의 노인은 치매와 치매를 돌보는 노인, 두 종류뿐이라고 했던가. 그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일찌감치 시대를 앞서가고 있는 꼴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정체성에만 매달려야 할까? 오히려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은 것은 아닐까. 알츠하이머라는 제2의 정체성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 남편은 제2의 정체성으로 이행하고 변용되고 있다.

한국의 웬디 미첼이 되어 알츠하이머병의 삶과 일상, 모든 것을 기록하겠다 한다. 남편의 정체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변용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거지'를 쓰고 있는 것일까?


여름에는 "바람만 불면 시원할 텐데"라고 말한다.

겨울에는 "바람만 안 불면 따뜻할 텐데"라고 말한다.

봄이면 훈훈한 봄바람. 가을이면 선들선들 가을바람. 겨울이면 칼바람으로 불리는 바람.

바람의 정체성은 바뀌는 것일까 아니면 그대로인 것일까. 정체성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