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기다리는 힘

내부원인 causa sui의 글쓰기

by 채송화

글 적금을 들 듯이. 일수를 찍듯이. 하루 한 편 글을 쓴다.

브런치 서랍에 글이 모인다. 내일이 되면 글을 올려야지. 세상에! 내가 내일을 기다린다고?

기적이 찾아온 듯 놀랍다. 손이 먼저 안다더니, 내 손끝이 나를 내일로 이끌고 있구나.

글을 쓴다는 건 내일을 살게 하는 힘이 있구나.


글은 고통 속에서 나온다던데. 고통이 이만큼이면 글도 이만큼일테지.

치매와 비슷하네. 치매도 당사자가 그만큼이면 보호자도 그만큼인데.

내 고통이 이만큼이다. 남편 치매도 이만큼이다. 나만 안다.


내일을 두려워하기만 했다. 내일은 어김없이 남편의 치매가 하루치 진행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이 힘은. 그렇다. 내일에 갇혀 걱정하는 마음의 방향을 틀어 준달까.

분담을 한달까. 그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아니, 무시 정도가 아니다.

지금. 오늘을, 오늘의 나를 살게 해주는 명실상부 버팀목이다.


왜 그런지 몰라도. 글 쓰는 사람들은 뭔가 당당함이 있다. 여유가 있다. 자신감이 있다.

자신이 없어도 자신감이 있다. 자존심이 강하달까. 고통이여 나에게 오라. 던, 니체의 힘.

니체를 이해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고통을 뚫고 나오면 그렇게 되는가 보다.

생각해 보니 괴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외부원인에 휘둘린다 생각했다. 나는 늘 잔잔한 호수라고 생각했다. 잔잔한 호수에 외부에서 돌을 던져 파문이 이는 거라고. 그러니 어쩌겠냐고. 외부원인에 의해 파문이 이는 걸 어쩌겠냐고. 그랬었다.

하지만, 이제 알 것도 같다. 내부원인이 응시하는 것이다. 내 풍랑. 내 파도. 누가 던졌든 나는 엄청난 파도가 친다. 이건 자연법칙이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부에서 잠재워지고 있었나 보다. 글을 쓰면서 내 속에서 어떤 힘이 생기고 있었나 보다. 아마 내부원리를 나도 모르게 감지하고 있었던걸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힘이 나를 당장 강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가난과 질병 앞에서 다 덤비라고 곧바로 큰소리치게 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내부원인의 힘은 그런 차원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천천히 이행되고 변용되고 있음 또한 감지한다.


평생의 화두였다. 나는 고요하고 싶다. 그런데 누군가 나한테 돌을 던지면 나는 싫어도 외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구조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결책이 있다는 걸까. 궁금했었다. 먼저 배운 사람들은 말한다.

배를 키우라고.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쳐도 끄덕 않을 만큼 배를 키우라고 했다. 그런 비유로 될 일일까 싶었다. 비유는 비유를 낳는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물이 얼어야 되겠네? 그것이 변용인가? 이론적으로 따질수록 비유일 뿐. 실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나룻배든 쪽배든 상관없지 않을까 싶다.


내 멘털이 유리든, 개복치든, 렛서펜더든. 지금 부는 내 풍랑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그 폭풍의 핵 속에 들어 있다. 그 속에서 나는 내일을 기다린다. 글을 쓰면서. 그 힘이 나를 버티게 해 준다.

남편의 알츠하이머병 진단. 그때부터 마치, 신문지 위에 한 발로 서서 버티는 게임에 '휙' 던져진 것 같았다.

반 접고, 또 반 접고. 접어지는 만큼 내 삶의 입지도 좁아진다. 그렇게 외발로 버티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버티고 있었던 건, 내 기질이 내부에서 강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기질은 글을 쓰는 것이다. 세상 전반의 공통통념은 모를지라도, 내 삶의 열쇠는 손에 닿고 있는 것 같다. 그토록 궁금했던 내부원인의 메커니즘이 드러나고 있다.


자장율사의 지팡이가 천년을 거치며 커다란 주목이 되었다지.

글을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지 않고, 한 발로 한 뼘 오늘의 무게를 지탱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