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양대산맥

번호표를 뽑으면서

by 채송화

내가 사는 지역에 이른바 철학관의 양대산맥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두 군데 다 갔었다. 마흔 중반까지는 점을 보러 더러 다녔다. 젊었을 때다. 그 이후 발길을 끊었다. 앞으로도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점을 보고 굿을 해서 나을 남편의 치매가 아니다. 내 인생 여기서 다른 길이 있을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더 볼 것도 없다.


점집이든 철학관이든 타로든 나는 하나도 맞다 싶은 게 없었다. 더러는 귀신같이 맞추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못 만나봤다. 그런데 내 멘토언니와 우리 언니는 그런 사람을 딱 한 번씩 만났다고 한다. 전설 같은 그 얘기는 지금도 떠 오른다. 멘토언니는 "유 씨 성을 가진 키가 큰 남자가 나타나. 그자가 베필이야" 그랬다고 한다. 그 얘기를 잊고 살았는데, 결혼하고 살다가 떠 올랐다고 한다. 정말 '그자가 남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언니는, "얼마를 원해? 겨드랑이에 장부 끼고 다닐 거야 걱정 마. 서른여덟부터 펴여" 했다는데, 정말 그랬다. 언니네는 은행 가서도 '따로 번호표 빼지 않고' 살고 있다. 언니의 시련은 결혼하고 딱 십 년이었다. 그런 말은 꼭 뒤늦게 말해준다. 내가 한 번 가고자 할 때는, 때는 늦었다. 언니들도 그 점집이 어디인지, 누구인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마치 전설의 고향과도 같은 이야기다.


그럼에도 유명하다는 철학관 두 곳을 나도 한 번씩 갔었다. 마흔 중반까지는 그래도 내 미래가 달라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나 보다. 그때 한 곳에서 나한테 말하기를 53세가 되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했다. 내 인생은 긍정적으로 달라질 거라 했다. 하지만 남편과 사별이든 이혼이든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철학관에서는 나한테 해 줄 말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이지 다시는 그런 곳에 가지 않았다.


먼 소문으로 그 양대산맥은 모두 죽었다고 들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 다시 가서 묻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

떠올려 보니, 그래도 한쪽 산맥은 맞췄나? 싶은 게, 어쨌든 남편과 사별도 이혼도 아니지만 이상한 헤어짐이긴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사주팔자에도 알츠하이머는 안 나오겠지 싶은 것이다. 다만, 인연의 자연스러움이 깨진다고는 나오는 걸까 싶다. 그래서 사주명리학은 논리니 통계니 과학이니 주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로또를 사 본 적은 없지만, 그날이 가까워 짐을 기다리는 맛이 이런 건가 싶다는 걸 알 것도 같다. 나도 53세를 기다렸었다. "늦게 꽃이 활짝 필 팔자"라고, 언니가 배우던 사주명리교실 강사가 봐준 내 쾌다. 지금은 철학과 교수가 되었다는 그 강사의 말도, 맞지 않음이 드러났다. 늦게 활짝 핀다는 내 꽃은 피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보루인 53세도 지나갔다. 내 팔자가 지구에서 우주에서 완전히 소멸된 것 같은 느낌이 불쑥 든다.

나한테 해 줄 말이 없다던 나머지 양대산맥 그이도 맞춘 것도 같다. 역시 양대산맥이긴 한가보다.

이제 나도 나한테 해 줄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