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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을지로의 바, 그 자리에서

당신은 힘들때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나요

by 아비치크


'사장님!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저 지금 가고 있어요!'


나는 오늘 오랫만에 내가 좋아하는 바의 사장님을 뵈러 간다.


몇 주 전, 할 이야기가 있다고 들렀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오늘은 그곳까지 가기가 망설여졌다.


최근 몇 주는 일적으로 너무나 힘든 날들이었다.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신기할 정도로 모든 어려움이 한꺼번에 몰아오던 그런 시기.

새벽은 그리 길지만은 않으리라 알고 있었지만 아침이 쉽게 밝지 않았다.


이런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마음은 꼭 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결국 야근 때문에 조금 늦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뒤, 나는 을지로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손님들로 가득 찬 주점에서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바 테이블뿐이었다.


사장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지만, 너무나도 바쁜 시간대라 기다려야 했다.

잠깐 숨을 돌리고, 이번주를 복기해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어떻게 이렇게 바쁠 수 있지.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아플 수 있지.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그때 사장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바쁘다더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천천히 와도 되는데."

"불러주시면 빠르게 와야죠. ㅎㅎ. 요새 잘 지내시죠?"


간단한 안부인사와 함께 내어주신 피자와 맥주.


이야기를 더 나눌 새도 없이 다시 바쁘게 움직이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내어주신 마르게리따 피자를 한 입 물었다.


평범한 호프집의 피자였지만 조금 달랐다.

더 따뜻했고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포근한 말 한마디 속에 지난 몇 주간 힘들었던 내가 숨을 쉬고 있었다.


'더 잘 살아야지.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고 챙겨주는데, 잘 살아야지.'


공간의 힘이란 이런 걸까. 마음을 진솔히 이야기 할 수 있는 바 테이블에서,

우리는 마음에 남아 있는 어려움을 터놓고 풀어나갔다.


아니, 게워나간다.


각자의 마음 속 어려운 하나 하나를 게워내며 복기하고, 서로의 의견으로 씻어 다시 흡수한다.

나의 어려움은 이야기하며 넘기고, 상대의 어려움도 들어주며 함께 걱정을 씻어낸다.


마치 조선시대 강물에서 빨래를 함께 하던 아낙네들처럼, 우리는 오늘 각자의 근심 걱정을 씻어냈다.

빨리 빨래터에 가서 대화를 하고 싶었을 그녀들 처럼,
나는 을지로의 빨래터에 너무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나의 근심걱정이 빨래통에 가득 찼었나 보다.




하루 종일 떠들고 공격하고 방어하며 회사에서 수많은 말로 에너지를 소진했지만,
저녁 8시의 나는 을지로에서 다시 한 번 에너지를 냈다.


그저 공간에 앉아서 멍을 때리는 것도,

각자의 걱정을 맥주 한 잔으로 털어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공간과 사람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챙겨주는 관심과 사랑을 나는 에너지로 쓸 수 있는 사람이란 점이었다.


오늘도 을지로는 따뜻하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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