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줄 쓰기의 힘
새 학기가 되면 어린이들이 어떤 교과를 좋아하는지 설문을 한다. 설문을 할 때에는 국어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몇 이나 될지 긴장이 된다. 물어보나 마나다. 체육이 당연 인기다. 음악도 몇 명, 미술도 조금 좋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국어는 꼴찌 가까운 저 끝에 매달려 있다.
어린이들 몇 명에게 인터뷰를 해 본다.
-국어는 뭘 쓰라고 하는 게 많아요.
-읽을 게 너무 많아요.
저학년 때는 그럭저럭 국어공부를 재미있게 했을 텐데 중학년을 거쳐 고학년에 이르면 어린이들에게 국어교과서는 그저 딱딱한 벽돌이 돼버리는 듯하다. 어떻게 해결할지 늘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시작한 게 아침 두 문장 쓰기다, 한 때는 한 문장 쓰기를 하다가 몇 년 전부터는 두 문장 쓰기를 했다.
1. 글쓰기 걸음마, 한 문장 쓰기
글을 쓰라고 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몇 줄 써요? 묻는 어린이들이 있다. 몇 줄 써요, 속에는 쓰기 싫은 마음이 들어 있다. 그런 말이 나오지 않게 처음부터 딱 한 줄만 쓰라고 하면 볼멘소리가 잦아든다.
먼저 그간 내가 써온 그림일기를 보여준다. 기록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다. 곤충이 등장하는 그림일기는 여자 어린이들보다 글쓰기와 거리가 더 먼 남자 어린이들 호기심을 끈다. 더 보여줘요, 하면 천천히 더 보여줄게 한다.
또래 친구들이 지난해 쓴 아침 두 문장 쓰기 수첩과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보기 문장도 몇 개 보여 준다.
아침 글쓰기 수첩은 보통 8절 캔트지나 A4종이로 만든다. 반을 접어 쓰는 한 장 짜리 글쓰기 수첩인데 달마다 종이 색상을 바꾼다. 종이 색상을 바꾸면 전 달 수첩과 구분도 되고 새로운 기분도 느끼게 된다.
수첩에 쓴 얌전한 글씨체에 어린이들 눈이 반짝한다. 어떻게 그렇게 글씨가 반듯하냐고 묻는다. 이럴 때면 여러분도 글을 쓰다 보면 이렇게 글씨가 반듯해진다고 기운을 북돋아준다.
▪ 크레인이 나를 죽일 뻔했다. (4학년)
▪ 학교에 가려고 하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머리카락이 날렸다. (3학년)
▪ 아침에 너무 추웠는데 학교에 와보니까는 햇빛이 운동장을 비추고 있었다. (3학년)
어린이들이 쓴 문장을 보면 시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문장에 생생한 감각, 자유로움, 따뜻함, 두려움 같은 다양한 감각과 감정이 묻어난다.
어린이들은 타고난 감각으로 싱싱한 시를 토해내기도 한다. 귀찮은 마음에 뻔한 이야기를 쓰는 어린이도 있지만 보기글이 될 만한 글을 골라 꾸준히 읽어주고 보여주면 조금씩 달라진다.
2. 두 문장까지도 쓸 만하다
한 줄만 쓰라고 하면 희한하게도 두 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나 보다. '두 줄 써도 돼요?' 하는 어린이들이 나오는 것이다. 마음속 청개구리가 발동한 것이 분명하다. 기분 좋게 '음, 꼭 쓰고 싶다면 두 문장까지 써도 된단다.' 하고 말해준다.
■ 오늘 아침에 집에서 나왔는데 집 앞 문에 벌이 있었다. 나는 무서웠다. 나는 살금살금 걸어갔다. (인천남부초 2년 안태현)
■ 학교 오다가 달팽이를 봤다. 달팽이가 땅바닥을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가다가 나뭇잎에서 떨어졌나 보다. (인천남부초 2년 송준영)
■ 아침에 친구들도 같이 왔는데 오다가 두 명이 자기네 끼리만 갔다. 영원한 친구라고 말할 땐 언제고. (인천남부초 2년 김혜민)
두 문장까지 괜찮다고 했더니 세 문장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어린이가 생긴다. 이 두세 문장에 깨알 같은 정보가 들어있다. 마냥 어릴 것만 같은 2학년 어린이들이 친구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영원’이라는 낱말을 쓴다. 저학년 어린이들은 몸에 닿는 일, 감정에 남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고 잘 표현한다. 글감을 찾는 데에도 글을 쓰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는 편이다.
3. 고학년, 귀찮지만 한 문장이니까 쓴다
고학년은 조금 상황이 다르다. 5학년이 되면 갑자기 과목이 늘고 수업시간도 늘어난다. 영어는 시간마다 단어 쓰기 숙제가 있다. 다른 과목도 수행평가니 해서 적잖은 과제가 생긴다.
이미 귀차니즘과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 저 아래에서 고개를 디밀고 있는데 여기에 글쓰기를 덤으로 얹어주니 학교가, 공부가 싫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한 문장은 해볼 만하다. 다행히 고학년 어린이도 한 문장은 쓸만하다고 생각한다. 한 문장 쓰기를 시작할 때에는 날마다 쓸 거라고, 종업식 날까지 하게 될 거라고 부드럽게 못을 받는다. 이때 설득하는 말을 해주면 도움이 될 듯하다.
-고학년이라 피곤하고 힘든 마음은 이해한단다. 그런데 힘들어도 하루하루 기록하다 보면 의미 있는 나만의 역사물이 나올 거야. 이순신 장군도 임진왜란 중, 그 피곤하고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며 일기를 썼지.
여기에 '안네의 일기' 얘기까지 덧붙이면 제법 분위기가 진지해진다. 시작은 3월 첫날이나 적어도 다음날, 늦어도 첫 주에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하다.
아침 한 문장 쓰기는 어린이가 제 마음을 다독이는 묘약이 되기도 한다. 한두 문장을 쓰면서 마음이 괜찮아지는 것이다.
■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어제 잠이 안 와서 1시에 잤기 때문이다.(5학년)
■ 아침에 우산을 못 가지고 나왔다. 비 맞은 채로 학교에 왔다.(5학년)
일기검사를 하지 않게 된 뒤로 교사는 어린이에 대한 정보를 감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어린이를 이해하는데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다행히 아침 두 문장은 어린이 마음으로 들어가게 길이 되기도 한다. 겨우 한두 문장이니 짧은 시간에 학급어린이 글을 다 읽을 수 있다.
■ 학교 오면서 슬프고, 짜증 나고, 힘든 생각이 나서 울고 싶지만 마음을 가라앉혀야겠다. (5학년)
이 어린이는 종종 이런 문장을 썼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추스르는 거 같았다. 어두운 얼굴을 할 때에는 근처에서 맴돌며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주곤 한다. 한 문장 쓰기가 아니었더라면 무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오는 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 알람 음악을 매테오로 바꿔서 일어날 때 조금 신났다.(6학년)
■ 어제 자전거를 타다가 송충이가 있어서 송충이를 살리려고 방향을 확 꺾었다. 뒤를 돌아보니 송충이가 열심히 기어가고 있었다.((6학년)
■ 학교에 오다 은수를 보았다. 은수가 먼저 인사해 주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6학년)
한 문장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힘들어서 알람 음악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꿔보는 어린이를 만난다. 송충이 하나 살리려고 애쓰는 여린 어린이 감성을 만나기도 한다. 이런 글은 혼자 보기 아까워 국어 공부 시작 전에 읽어준다.
4. 두 문장, 써도 써도 싫었어요
학기 말 즈음 몇몇 어린이들과 두 문장 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남자 어린이 하나가 인상 깊은 소감을 들려주었다.
-선생님, 저는 한 달이 지나도 두 문장 쓰기가 싫었어요. 두 달이 지나니까.,,,,,그래도 싫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두 문장을 안 쓰면 허전한 거예요.
이 어린이는 3월, 4월이 되도록 비슷한 문장을 쓰곤 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집안이 고요했다. 일어나 보니 6시 30분이었다.(3.7)
-아침 6시 40분에 일어났다. 너무 졸려서 20분만 더 잤다.(3.11)
문장은 괜찮다, 그런데 며칠이고 비슷한 이야기를 써온다. 비슷한 문장이 이어지는 날은 다시 써 볼 것을 권한다. 교문 들어오면서 본 것, 우리 반 목련 나무의 변화, 날씨 묘사를 권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일요일에 자전거 연습을 하러 갔다. 자전거는 할아버지가 주신 건데 낡아서 조금 탔는데도 펑크가 났다.
글에 구체성이 생겼다.
-아가에게 게임기를 주고 싶다는 의견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정말 좋은 표현이다. 재현이 생각이 굿이다. 오늘 시험 때문에 너무 떨려서 중간중간 몰래 동생 '하루'사진을 보면서 떨림을 가라앉혔다.
또 친구가 쓴 글을 관심 있게 보면서 감탄하고 칭찬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 어린이에게 동생이 태어났는데 동생을 아끼면서 성장과 변화를 글로 쓰는 일이 늘었다,
-우리는 지금 번데기 시기다. 어서 장수풍뎅이가 되면 좋겠다. 용하윤 글이 마음에 든다. 진짜 하윤이는 학원 다니며 공부하느라 바쁘구나, 나는 잽도 안 되는구나! 나 같으면 다 그만뒀을 거 같다.
비유적 표현을 문장에 도입하는 변화가 생겼다. 친구 글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자극을 받곤 했는데 다행스럽게 글쓰기와 표현에 대한 의지로, 선생님 글에 대한 진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선생님은 간단하게 꽃씨신문용으로 글을 쓰는데 정말 잘 쓴 단편소설 같다. 진짜 내가 선생님이었으면 상+++를 주고 싶다. 술술술 읽힌다.
-나도 남아서 책을 만들고 싶다. 진짜 진짜 만들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남아서 책 만드는 친구들이 많이 부럽다. (7.4)
두 문장 쓰기가 싫던 어린이는 조금씩 좋은 글을 보는 눈이 생기고 잘 쓰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듯했다, 책을 만들고 싶은 열의도 생겼다. 긴 글을 쓰는 힘도 커졌다.
<자전거> 최 00
난 자전거를 탄 지 일 년도 안 된 초보다. 하지만 자전거를 너무 좋아해서 계속 타다 보니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타던 웬만한 친구들보다 더 잘 탄다.
보통 '한숲아파트'에서 친구와 자전거를 탄다. 나는 mtb산악자전거 중 스타카토라는 브랜드 자전거를 타고 있다. 하지만 mtb에는 관심이 많이 없었다. bmx라는 묘기용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bmx는 다른 자전거들보다 작아서 실용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다른 자전거를 찾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사줄 리 없었다.
(7줄 줄임)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집에 가기 전에 아빠가 어디를 가자했다. 나는 거절하려다 집을 나섰는데 ‘스카이’라는 네임 브랜드의 로드 바이크가 있었다. 기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빠가 당근마켓에서 산 것이다. 자전거를 고치니 완벽했다. 자자전거를 고치고 처음 탔을 때 타자마자 캬, 소리가 나왔다. 역시 로드 바이크였다.
그런데 난관에 봉착했다. 그 이유는 일체형 브레이크라 기어와 브레크가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탈 때 집중 하지 않으면 브레이크를 잡을 때 기어도 바뀐다.
연습을 많이 했다. 손이 아렸다. 원래는 비앙키라는 블렌드페 니로네 7을 사려고 했는데 그것은 판매 예약이 되어 못 샀다. 하지만 갑자기 당근에서 알람이 왔다. 아버지가 그것도 사준다고 하셨다.
(13줄 줄임)
자전거 세계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알쏭달쏭한 자전거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고 빠져든다.
이 글을 쓰면서 흥미도는 5점 만점에 5다.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물건 식물, 동물 등으로 글을 쓰니까 뭔가 재미있고 더 알아보게 된다.
이 어린이는 이제 글 쓰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조금 알게 된 듯하다.
-나도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야지 했다. 아, 정년 퇴임하시는구나! 고민하다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보내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두 문장 쓰기조차 귀찮아하던 어린이가 퇴임하는 선생님께 편지 쓸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멋진 변화다.
어린이들이 주간에 쓴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은 주말에 발행하는 주간 꽃씨신문에 실린다.
주말신문 한 문장 꼭지는 인기가 제법 있다. 어린이들은 물론 부모님도 관심을 보인다.
어린이와 부모님은 한 문장의 힘을 알아챈다. 한 문장씩만 썼는데 반 어린이 모두가 쓰니까 어린이 일상, 마음이 훤히 보이는 거 같다고 답글을 쓴 부모님도 있다.
이렇게 한 문장을 쓰면서 어린이들은 쓸거리를 찾기 위해 고민하게 되고 차츰 글 쓰는 일에 익숙해진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사라진다.
마음에 시도 쌓인다. 글과 조금씩 친해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긴 글을 쓰게 된다. 여기에 알맞은 시기를 보면서 관찰일기도 쓰고 시 쓰기도 한다. 아주 긴 글쓰기에도 도전하게 한다. 다양하게 글쓰기 근육을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