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 이팝나무가 보이는 카페에서

by 강승숙

오늘 카페에 갈까, 남편의 한 마디에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들뜬다. 주섬주섬, 뒤적뒤적 문고판 책 한 권과 펜, 수첩, 그리고 텀블러를 챙겼다. 오늘 가려는 카페는 집 가까이에 있다. 그 카페는 이팝나무가 열 지어 서있는 테라스가 일품이다. 봄은 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분위기 있다. 다른 카페도 있지만 굳이 이곳을 가는 까닭이 있다. 남편이 3만 원짜리 커피 적립 카드를 사면 유리컵을 준다는 말에 혹해서 적립 카드를 구입한 것이다. 남편은 돈 천원도 허투루 쓰지 않지만 종종 마음에 드는 컵이 보이면 별스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아직 내가 사는 동네에서 청춘 시절 즐겨 찾던 그런 카페를 찾지는 못했다. 감성도 시대도 나이도 달라져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설사 그 시절보다 더 좋은 카페가 나타나도 추억이 묻은 오래전 카페보다는 점수를 더 주지 못하는 듯하다.




카페, 하면 바로 떠오르는 카페가 있다. 스물서넛 조금 즐겨 가던 카페였는데 경인 철도역 가까이에 있었다. 역 광장을 지나 도로 쪽으로 나가는 바로 그 길모퉁이에 있던 '길모퉁이 카페'였다. 2층이고 유럽 고전 문학에 나올만한, 다락처럼 작고 동화적인 공간이었다. 그곳은 조용했다. 어쩌다 친구랑 가면 우리밖에 손님이 없을 때가 많았다. 혼자 가는 날도 있었다. 폼 낸다고 이 백 원 더 비싼 비엔나커피를 시켜놓고는 창밖을 보며 쥐어짜듯 감상에 젖곤 했다.




기억에 남는 카페는 또 있다. 작은 창으로 인천 바다가 보이는 카페다. 간판에는 그냥 '보차'라고 쓰여 있었다. 길모퉁이 카페보다 더 작은 찻집이었다. 아무 꾸밈없는 허름한, 허준의 약방처럼 탕약 냄새 물씬 풍기는 찻집이었다. 그곳은 겨울에 가곤 했다. 처음 갔을 때 공교롭게 눈이 내렸다. 복사지만 한 작은 창으로 고래만 한 큰 배가 보이는 풍경이 사뭇 모네의 '일출' 같았다. 그래서 그냥,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이랑 경인철도 종점에서 내려 자유공원까지 오른 뒤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너무 추워 찾아 들어갔던 보찻집, 그 진한 대추차 맛이 새삼 그리워진다.



남편이 주문하러 간 사이 수첩과 펜을 꺼냈다. 눈앞 유리창으로 펼쳐진 녹색 풍경에 가슴이 파래지는 듯했다. 이팝꽃은 어느새 지고 조금 짙어진 연두잎이 살랑거린다. 이 카페의 백미는 바로 테라스를 따라 자라고 있는 이팝나무다. 오래전 길모퉁이 카페하고는 견줄 수 없지만 이곳이 그래도 마음에 드는 점은 이팝나무를 볼 수 있어서다.




카페를 올 때면 보이는 대로 쓰고 그리는 습관이 있다. 무슨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게 재미있어서다. 남편은 내가 뭔가를 그리고 쓰는 걸 좋아하는데, 중간중간 남편에게 쓴 글을 보여준다. 수첩에 뭔가를 쓰고 그리는 사이 남편은 소설을 읽는다.






둘러보는 데 맞은편 왼쪽 테이블에 혼자 있는 중년 남자가 보인다. 은퇴한 사람이라 짐작해 본다. 노트북을 열고 있는 걸 보니 나름 계획을 가지고 있는 분 같다. 남자는 커피가 아닌 연한 차를 마시고 있다. 허브차 종류 같다. 노트북을 켜 놓고 남자는 폰을 만지작 거린다.




사실 더 관심이 가는 사람은 맞은편에 앉은 남녀다. 1, 2분의 관찰 끝에 두 분이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점잖았고 말씨나 몸짓이 정중했다. 말을 경청하는 듯 보였고 지루해질 즈음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소리 내서 웃기도 했다. 이렇게 멍 때리듯 쳐다보면서 스스로 추론하고 짐작해 보는 것이 글 쓰는 자의 즐거움인 듯하다. 한참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더니 두 사람은 일어났다.






시간이 좀 흐르면서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다. 테라스로 난 문이 열려있다. 바람이 들어온다. 배낭에서 손수건을 꺼내 목에 둘렀다. 문득 바깥 테라스에 있는 손님들이 궁금해졌다. 이팝나무 잎이 많이 흔들리는 걸 보니 바람이 꽤 부는 거 같은데 예닐곱 모인 여자들은 수다의 재미 때문일까, 추워하는 걸로 보이지 않는다.





테라스 쪽을 보았다. 긴 웃옷을 입고 있는 젊은 남녀다. 친해 보이기도 하고 죽이 잘 맞는 것으로도 보인다. 처음에는 각자 폰을 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곧 남자가 여자에게 폰을 보이며 뭔가를 말했고 여자는 계속 남자 폰을 가까이 보면서 얘기를 했다. 그렇게 좀 오래 있으면서 서로 어깨를 두르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했다. 곧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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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식물에 대한 책을 보고 있다. 식물유전학을 전공한 사람이 쓴 글인데 에피소드가 부족해 아쉽다고 했다. 나무위키 같은데 나오는 정보와 크게 다를 거 없다며 식물에 대한 개인적인 사연을 넣어 글을 썼으면 더 좋았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거 같았다.




카페의 백색소음은 다양했다. 주방에서 얼음 퍼내는 소리, 믹서기 돌리는 소리, 스텐 도구가 부딪치는 소리, 여기에 구석 쪽 손뼉 소리도 섞인다. 하지만 이내 오후의 호젓함 속으로 흩어진다. 혼자 차 마시는 남자, 나이 든 연인, 젊은 연인 그리고 잠시 풍경을 둘러보았다. 남편 옆으로 앉아있는 세 명의 젊은이들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들을 수첩에 담을 시간은 없다. 하지만 그냥 생각해 본다.




젊은 남자는 하얀 이어폰을 끼고 있는데 무슨 리포트를 쓰는지 타이핑을 부지런히 한다. 아이스 까페라떼를 주문한 듯한데 별로 마시지 않았다. 바로 옆 단발 펌을 한 여자는 초롱한 눈으로 노트북을 뚫어지게 본다. 흰 이어폰을 끼고 있다. 그리고 다다다다 타이핑을 한다. 처음에는 무슨 시험준비를 하나 했는데 아닌 거 같다. 뭔가 쓰는 걸로 보인다. 마지막 주방가림막 쪽에 붙어 앉은 여자는 누구랑 통화를 하는지 중얼중얼한다.




두어 시간 논 뒤 남편이랑 카페를 나왔다. 쓰고 그린 카페 기록물이 가방 안에 있다. 한 때, 다른 나라 카페와 테라스가 있는 거리를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게 우리들 이야기가 된 듯하다. 한집 건너 카페가 있을 정도로 일상적인 공간이 되었다. 문학과 정치, 예술을 논하는 공간으로, 아니면 일상의 무료와 고단함을 달래는 소중한 공간으로, 나름, 우리의 카페 문화를 만드는 중인 듯하다. 남편이 쥐어준 3만 원짜리 카드는 잔액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다음에 남편이 오랜만에 카페나 갈까 하면 두말없이 따라나설 참이다. 하오의 이팝나무 카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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