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천(춘천) 따라 걸으며 하나씩 알아가는 풀꽃과 나무, 그리고..
근처 우리가 명명한 원시림으로 수렵을 떠난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준비하고 배낭을 멘 뒤 작은 가방에는 커피를 챙겼다. 남편은 빨리 준비하라고 날마다 채근하지만 나는 어김없이 늑장을 부린다. 수렵을 떠나야 하니 챙길 게 많은 것이다. 알코올솜, 플라스틱통, 미니색연필, 수첩, 딱풀, 개천에 발 씻을 때 쓸 손수건...... 챙겨간 물건 대부분은 쓰지 못하고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언젠간 필요한 물건들이다.
아파트 건물을 나서니 시원하게 벋은 벚나무가 초록 이파리를 흔들거린다. 한때 벚꽃으로 내 맘을 흔들어 놓더니 이제는 초록잎으로 위안을 준다. 길을 건넌다. 소나무와 목련을 지나 개천가로 접어든다. 초입 플라타너스는 웅장하다. 플라타너스를 보고 있으면 거대한 숲에 들어선 기분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원시림에 들어섰다. 원시림 끝에는 마트가 있다. 마트에 언제 닿을지는 알 수 없다. 예정시간에 갈 때도 있지만 새로운 것들이 발길을 멈추게 하는 5월 원시림을 지날 때는 기약하기 어렵다.
남편이 찍은 씀바귀 (갤럭시 S23)
'참새귀리'와 '나도 냉이' 이름을 알게 된 남편은 이제 하루에 한 가지라도 식물 이름을 알아야겠다며 '인디아나 존스'박사처럼 앞서 풀밭 밀림지대를 헤치고 나간다. 남편은 나의 식물에 대한 관심을 조금은 귀찮아했다. 갈길이 있는데 자꾸 멈추는 게 영 성가셨던 것이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식물도 사생활이 있는데 너무 알려고 하지 마.'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랬던 남편이 서서히 식물에 스며들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내가 그냥 지나치면 이 풀이 뭐지, 하고 걸음을 붙들곤 한다. 어쩌면, 이대로 가다 보면 부부 식물탐구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픽 웃곤 한다. 집 근처 원시림 탐구가로 이름 붙이고 그렇게 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괜스레 설레기도 한다.
냉이꽃이 보인다. 어릴 적 동네 친구 만난 듯 해년마다 정겨운 꽃이다. 냉이꽃은 어릴 적 도랑가에, 논길에 무덕무덕 피었다. 그때는 대충 비슷하면 대놓고 냉이꽃이라고 생각했지 이름은 정확하게 몰랐다. 이제는 구분해보려고 한다. 황새냉이, 말냉이, 그리고...... 검색창을 열고 얼른 사진을 찍었다. 1초, 2초...... 콩다닥냉이로 나온다. 이제야 기억난다. 콩다닥냉이였다. 남편에게 이름을 알려주니 어? 뭔다닥? 하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동안 여기저기 하얗게 핀 냉이꽃을 바라보았다. '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라고 쓴 어떤 시인의 시 구절이 생각났다. 누군가 일하다 박카스 한 병으로 기운을 얻고는 휙 던져놓았을까, 하필 떨어진 곳이 냉이꽃이었나 보다. 어디에 무얼 던져도 냉이꽃 근처에 도달할 만큼 예전엔 냉이꽃이 흔하디 흔했다.
남편이 찍은 콩다닥냉이 뒤로 보이는 '나' (갤럭시 S23)
몇 걸음 더 갔다. 낯선 풀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도 지난 길인데 보지 못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거 같다. 참새귀리 이름을 알고 난 뒤 남편은 이런 류의 풀에 호기심을 갖는 듯했다. 외떡잎류, 꽃다운 꽃이 피지 않는 풀 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알고 있는 풀은 강아지풀이나 바랭이, 방동사니, 그령 정도다. 그래서 참새귀리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아주 기쁜 일이었고 이제 새로운 풀이름을 알게 될 수도 있으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남편이 찍은 '산괭이사초' '살쾡이사초' (갤럭시 S23)
이삭이 많이 달렸다. 벼과에 속하기도 하고 모양도 수수 같은 걸 닮아서 옛날 사람들은 이게 곡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름이 산괭이사초일까, 검색해 보니 살쾡이사초로도 부른다고 나와 있다. 여기저기 찾다가 '약초 1번지'라는 유튜브에서 힌트를 얻었다. 산괭이사초는 고양이 눈을 닮았고 수염처럼 줄기가 길게 뻗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산괭이사초' '살쾡이사초' (갤럭시 S23)
그런데 어디가 고양이 눈을 닮았다는 걸까. 열매 모양을 말하는 거 같다. 좀 더 알아보고 싶은 흥미로운 풀이다. <벼과 사초과 생태도감>도 있다고 하니 한번 읽어봐야겠다. 도서관에 이 책이 있는지 찾아보니 마침 있는데 대출불가로 나온다. 한번 가서 봐야 할 거 같다. 이름을 알게 되니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지고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벌써 한낮은 20도를 넘는다. 잠시 해를 피해 시원한 다리밑으로 들어가 숨을 돌리며 커피를 마셨다. 자전거가 휭 지나간다. 강아지를 넣은 배낭을 메고 있다. 머리를 내민 강아지는 기분이 좋을까, 어지러울까 생각해 보았다. 파라솔을 펼쳐 놓고 낚시하는 남자도 보인다.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엎어놓고 물속에 들어가 노는 중학생 남자아이들도 보인다. 건너편에 나물 뜯는 아주머니도 있다. 우리가 명명한 이 원시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숲을 즐긴다.
달맞이꽃이다. 얼마 전 이름을 알아냈다. 달맞이꽃이 겨울을 로제트로 나는 것도 알고 있었고 여름날 노란 꽃을 피우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무릎만큼 올라왔을 땐 달맞이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되었다. 이번에 달맞이꽃 앞에서 멈춘 건 아래쪽 잎이 발갛게 물들어서다. 왜 아래쪽 잎이 붉게 물드는지 알고 싶어 진다. 길게 뻗어 올라야 해 아래쪽 잎은 버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달맞이꽃이 그런 계획을 가지고 처음부터 작정한 일인지도 모른다.
남편이 찍은 꽃피기 전 달맞이꽃 (갤럭시 S23)
원시림에서 겨우 빠져나와 마트에 다녀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빠르게 수풀을 지나리라 생각하며 남편과 속도를 내 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풀들이 아니라 살랑살랑 날아다니는 나비가 우리를 불렀다. 한눈에 봐도 남방부전나비이다. 오래전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이 나비가 가까이 오라는 듯 흙길에 얌전히 앉아있는 것이다. 남편은 조심스레 다가가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행여 나비가 날아가지 않을까 하여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남방부전나비의 여행자 여권사진으로 써도 될 만큼 잘 나왔다.
남편이 찍은 남방부전나비 (갤럭시 S23)
이번 수렵 채취활동은 소득이 많다. 콩다닥냉이와 산괭이사초를 알게 되었고 남방부전나비를 보게 되었다. 어린 갈대 이삭을 알아낸 것도 소득이다. 무엇보다 기분 좋은 건 남편이 남방부전나비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감탄한 것이다.
남편이 찍은 갈대 이삭 (갤럭시 S23)
남편이 찍은 채집가방 속 진남색잎벌레가 갉아먹은 소리쟁이 잎과 갈대 어린순 (갤럭시 S23)
마트를 오가는 공지천, 우리가 명명한 원시림에서 나와 남편은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되기도 하고 마사이족의 도보여행자가 되기도 한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보듯, 우리는 날마다 공지천에서 원시의 지구를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