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교시에 밥을 먹습니다

공들여 밥을 짓고 먹습니다

by 강승숙


늘 허겁지겁 아침을 먹고는 했다. 한 때는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셨다. 젊은 날이었다. 무슨 공부를 한다, 연수를 한다, 모임을 한다 하며 날마다 쏘다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혹여 몸이라도 상할까 봐 아침을 정성껏 준비하셨다.




밥과 국, 맛난 생선, 마당에 나가 막 뜯어다 무쳐놓은 비름나물까지 있었지만 제대로 먹은 날이 없다. 한 숟가락 겨우 뜨거나 늦었다며 바로 출근길에 나서기도 했다. 나이가 들었다. 이제는 바쁜 일이 없어 여유롭게 아침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갱년기가 고개를 내밀었다.




밤새 수십 번 뒤척였다. 잠이라는 게 어떻게 오는 건지, 과연 오기는 하는 건지 고민하다 잠이 들곤 했다. 아침이면 몸이 무거웠다. 도무지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남편은 찐 달걀과 채소, 빵 한 조각해서 미니 도시락을 싸주었다. 그걸 들고 출근을 했다.




삼십 여분 걸어서 학교에 도착하면 조금 입맛이 생겼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전날 마무리 못한 공책들이 쌓여있고 할 일들이 눈에 보여 간단 도시락마저 여유롭게 먹지 못했다. 한 입 먹고 창문 열고, 또 한입 먹고 책을 펼쳐보는 식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정년 퇴임을 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되는 이상한 아침이 펼쳐진 것이다. 낯선 세상에 착륙한 듯했다.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었고 급히 밥을 먹을 일도 없었다. 좋기도 하고 멍하기도 했다.




남편이 이제는 천천히, 즐기듯 밥을 먹어 보라고 했다. 전에는 음식을 준비하거나 먹는 시간이 일에 치여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이제는 먹는 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다. 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아침 준비를 했다.


음식은 건강을 생각해서 간이나 기름을 적게 써서 조리한다. 토마토, 대파, 아스파라거스, 버섯, 가지, 감자, 양파는 날 거 그대로 썰어서 프라이팬에 올린 뒤 약불로 익힌다. 미리 쪄 놓은 고구마도 따뜻해지라고 한 쪽에 놓는다. 소시지나 동그랑땡 같은 인스턴트식품을 쓸 때에는 미리 푹 삶아 첨가물이나 기름기를 뺀 뒤 프라이팬에 올린다. 식사 전에 먹을 상추나 양배추도 잘 씻어 둔다.



프라이팬에 올린 것들이 덥혀지거나 익는 동안 과일 샐러드를 준비한다. 색색의 채소와 과일을 보면서 만지는 이 시간이 새삼스레 좋다. 투명한 유리그릇 두 개에 오이, 방울토마토와 연둣빛 사과, 단호박, 주황색 한라봉을 넣는다. 과일이나 채소는 그때마다 있는 대로 조금씩 넣은 뒤 삶은 콩을 넣고 집에서 만든 요플레를 끼얹어 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빵을 굽는다. 남편이 손으로 치대 구운 빵이다. 빵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밥 먹는 일이 줄었다. 한 끼는 빵, 한 끼는 밥 이렇게 먹는다.



상차림이 다 되었다. 남편과 창가에 붙여놓은 식탁에 가서 앉는다. 9시, 교실은 지금 막 1교시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 1교시에 식사를 한다. 천천히 오래오래 음식을 씹으면서 창밖도 보고 영상도 본다. 가끔 메모도 한다.



남편은 노트북을 열어 좋아하는 여행 영상을 클릭한다. 우리는 순식간에 유럽 남부 스페인과 접속한다. 여행자는 지금 스페인 어느 촌구석 길을 걷고 있다. 중세 영화에서 나올 듯 한 고풍스러운 건물과 성당, 골목이 나온다. 우리는 그 풍경을 즐기며 우적우적 쩝쩝 식사를 한다.


나는 영상을 보기도 하고 옆 테이블에 펼쳐 놓은 일지에 어제 깜빡 쓰지 못한 일을 쓰거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몇 가지 적는다. 블루베리를 씻으면서 나온 보랏빛 물로 노트를 물들이기도 한다. 찢어진 깻잎 쪼가리로 즙을 내 공책 바탕에 문지르기도 한다. 딴 척이 심해질 듯하면 남편은 얼른 식사하라고 눈짓을 한다.


2ㄱ


이렇게 식사를 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돌아보면 속이 좋지 않거나 배가 아픈 날들이 많았다. 이제는 속이 편하다. 복잡한 일에서 멀어진 것도 있겠지만 순하고 느린 식사가 몸과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듯하다.




그간, 밥 먹는 일은 얼른 해치워야 할 일 정도로 밖에 대우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어서 그렇기도 했고 먹는 일과 건강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해 그런 점도 있다. 이제는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일에 시간을 많이 쓰려고 한다.




원시인처럼 멀리 걸어 저 쪽 동네 마트에서 음식을 구하고, 음식을 구한 뒤엔 돌아와 정성껏 갈무리를 할 생각이다. 배추는 절여 김치를 담그고 당근은 쪄놓을 것이다. 미나리나 고구마순을 구한 날이라면 알맞은 색감의 물감즙이 나올 수도 있을 듯하다. 혹시 아는가? 내 공책이 알타미라 동굴 벽화처럼 될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를 선물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