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은 따라온다
"꿈이 뭐야?"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상담 선생님이 물었을 때,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화가요. 그리고 소설가도 되고 싶어요."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해. 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그때 나는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거짓말 #001: "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대학 4년 동안 나는 이 말을 믿고 살았다. 새벽까지 그림을 그리고, 밤새워 소설을 썼다. 다른 친구들이 취업 준비를 할 때도, 나는 "난 꿈이 있으니까"라며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졸업 후 현실은 달랐다.
첫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만 500만 원이었다. 액자값, 대관료, 도록 제작비, 홍보비까지. 꿈만으로는 이 돈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했고, 그마저도 미안해서 전시 규모를 절반으로 줄였다.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3년간 써온 장편소설을 들고 출판사를 돌아다녔지만,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비슷했다. "참신하긴 한데, 상업성이 떨어져요." "문학성은 있지만 대중적이지 않네요."
꿈만 있다고 뭐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돈도 필요했고, 인맥도 필요했고, 운도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의 논리를 이해해야 했다.
거짓말 #002: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은 따라온다"
가장 독한 거짓말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은 콘텐츠 시대야.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쓸 줄 아는 너 같은 사람이 뜰 거야.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야."
졸업 후 1년, 나는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작업에만 매진했다. 하루 10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소설을 썼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돈이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돈은 따라오지 않았다.
첫 달 수입: 0원. 두 번째 달 수입: 공모전 참가비로 마이너스 5만 원. 세 번째 달에 드디어 일러스트 작업 하나를 받았는데, 받은 돈은 10만 원이었다. 일주일을 작업해서 받은 돈이 하루 아르바이트비보다 적었다.
문제는 '좋아하는 일'과 '돈이 되는 일' 사이의 거리였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그림은 달랐고, 내가 쓰고 싶은 소설과 출판사가 원하는 소설도 달랐다.
거짓말 #003: "열정만 있으면 된다"
"열정 페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첫 번째 일러스트 작업을 의뢰받았을 때, 클라이언트는 이렇게 말했다. "돈은 많이 못 드리지만,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열정이 있으시니까 괜찮으시죠?"
열정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열정으로는 월세를 낼 수 없고, 열정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는데?
하지만 그때의 나는 "경험이 중요하다"며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더 싼 값에 일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이 정도 가격에 하셨잖아요"라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열정은 소모품이었다. 계속 쓰다 보니까 바닥이 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열정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걸.
거짓말 #004: "꿈을 포기하면 안 된다"
2년간 화가와 소설가의 꿈을 붙잡고 있던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계속 이렇게 말했다.
"포기하면 안 돼. 꿈을 포기하는 순간 진짜 끝이야."
하지만 통장 잔고가 바닥나고, 매달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꿈'이라는 단어는 점점 무거워졌다.
그때 우연히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MD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상품 기획 및 브랜딩 업무, 창의적 사고 우대"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일종의 창작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처음에는 "이건 내 꿈이 아니야"라는 죄책감이 있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MD 업무도 충분히 창의적이고 흥미로웠다. 상품을 기획하고,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일 모두가 내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경험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짓말 #005: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진짜 성공이다"
MD로 일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이 생겼다.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었고, 월세 걱정도 사라졌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너 정말 하고 싶은 일 하는 거야? 그림 그리는 게 꿈이었잖아."
하지만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의 정의는 생각보다 유연할 수 있다는 걸.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던 창작 경험이 MD 일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MD로 2년을 일한 후, 나는 더 큰 도전을 하게 되었다. 아마존 셀러로 독립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작은 회사의 CEO가 되어 있다.
돌이켜보면, 화가와 소설가라는 '원래 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 확장한 셈이었다. 상품을 기획할 때는 화가의 감각이 필요했고,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 때는 소설가의 상상력이 필요했다.
현실은 이랬다
화가와 소설가의 꿈에서 MD를 거쳐 CEO가 되기까지, 5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들.
꿈은 고정된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고, 확장될 수 있다. 중요한 건 꿈의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본질'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돈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의 경험과 스킬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돈이 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꿈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꿈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도, 현실을 무시하는 것도 답이 아니었다. 꿈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진짜 해답이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화가"나 "소설가"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매달리지 않는다. CEO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 다만 이제는 취미로, 그리고 비즈니스에 필요한 스킬로 활용한다.
꿈에 관한 거짓말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나니, 비로소 진짜 내 꿈이 보였다. 그것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훨씬 더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형태였다.
때로는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시키는 것이 진짜 용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