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사 Jan 24. 2023

5년 뒤를 위한 기록

만으로 아직 32살인 내가 보내는 편지

5년 뒤에 나는 글이 많이 늘었을까?

3년 전의 나나, 지금의 나나 아직도 진로 미아인 건 똑같아. 머릿속에 든 건 조금 더 많아지고 성숙해지긴 했는데 겉으로는 알 수가 없어. 5년 뒤에는 더 이상 뭘 하면 좋을지나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하고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꾸따

한동안 꾸따에서 지낼 때는 아침 6시나 7시에 일어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어. 다친 다리가 아파서 해가 뜨면 눈이 저절로 떠졌거든. 아침마다 식염수와 거즈로 양 발과 다리를 닦아내고 그 위에 약을 발랐어. 약 먹는 시간에 맞춰서 하루 세 번씩 소독을 했는데, 한 번에 한 시간이 넘게 걸렸어. 이때는 먹는 시간과 약 바르는 시간 말고 별로 한 일이 없었지. 아프니까 생산적인 일은 꿈도 못 꿨고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 시즌 2, 3, 4까지 봤어. 보는 건 즐거웠지만 별 의미 없는 시간이었어. 그저 다리가 잘 낫기를 기도했어. 매일 아침 숙소에서 주는 조식을 먹었는데 매일 맛이 없었어. 스크램블 에그와 야채 볶음 그리고 한 종류의 빵을 8일이나 먹었어.




짱구

짱구로 이사 온 지는 일주일이 지났어. 나는 다시 원래대로 늦게 일어나기 시작했지. 자는 동안 피부가 빠르게 재생되길 바라면서 알람도 맞추지 않고 있어. 그렇게 9시나 10시쯤 일어나면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나갈 준비를 해. 바이크를 타고 갈 데도 없으면서 동네를 돌아다녀. 그리고 잘 모르는 식당에 찾아가 베지테리안 음식을 먹어. 하루 종일 글을 쓰고 다리가 저릴 때쯤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면 하루가 끝나.


코로나가 풀리면서 짱구 지역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나 봐. 새로 짓는 곳, 철거된 곳, 그리고 공사 잔해가 남아 있는 곳까지 길 위에 어수선한 데가 많아. 먼지도 많고. 전보다 눈에 띄게 부동산 사무실이 많아졌어.

코로나로 집 값이 떨어졌을 때 투자했던 사람이 많은가 봐.




계묘년

아직은 임인년 계축월이거든. 한 해의 마지막 달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조급해. 검은 토끼의 해인 올해 계묘년은 어떨까. 예전에는 신년 운세를 보면서 한 해의 흐름을 읽는 일에 관심이 아주 많았는데 이제는 그럴 시간도 없게 느껴져. 천간에 계수가 들어오면 정신 차려보면 시간이 흘러가 있더라고. 나는 정화라서 운에서 나를 극하는 계수를 만나면 불을 쥐고 있느라 긴장하고 대치하는 기분이 들어. 묘목은 나한테 편인인데 풀은 습기가 있어서 불이 잘 안 피어올라. 정화와 경금을 둘 다 가지고 있는 나는 그게 문제야. 경금을 제련해야 하는데 아궁이에 불이 시원찮게 붙는 거야. 그래서 나는 알아.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돈이 벌고 싶으면, 돈이 안 되는 일 말고 돈이 되는 일에 집중해야 해. 따지고 보면 이 글도 편인 티가 너무 많이 나는 글인 거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글을 쓴 거 자체로 만족하는데 그러면 안 되는 상황이야.



“너는 잘하는 게 뭐니?”



어제 웃자고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나왔는데 순간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았어. 요즘 잘 못 해내고 있다는 무의식이 나를 압박하고 있었나 봐. 3초 정도 정적이 흐른 후에 겨우 웃으면서 “글을 좀 잘 쓰는 거 같아요. 하하”라고 말할 수 있었어. 근데 사실 이것도 확실한 느낌은 아니었어. 내가 글을 잘 쓰나? 산만하고, 관점도 잘 담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아서 간결하게 쓰지 못하고.


예전에는 회사 일을 잘했던 거 같아. 질문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고, 본질을 잘 보고, 꼼꼼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상사가 원하는 대로 일처리를 잘하는 편이었어. 회사를 다니지 않는 지금 나는 뭘 잘할까?

다이빙은 잘하는 편이지만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노는 것만 좋아했지. 트레이닝이 싫었어. 운동도 그렇고, 운전도 그렇고. 못하지는 않는데 잘하지도 않아. 못하는 편인가. 디자인도 그런 편이지.




잘하는 거

혼자 있는 거 잘하고, 절약하는 것도 잘하고, 뭔가 돌보는 것도 잘해. 식물이나 동물들이랑 친해. 근데 그다음이 없는 거지. 워낙 예민해서 맛이나 디자인, 사용자 경험 평가하는 거 잘하고.

생각하다 보니까 잘하는 거 없는 사람은 아니네. 아니지.




갭이어

나는 작년부터 편관 대운을 벗어나 정관 대운이 시작되었어. 그 시점부터 회사는 그만두었고 대신 결혼할 사람을 만났어. 요즘 세상에 일을 안 하고 살 수가 없잖아. 돈이 없는데. 그래서 갭이어를 가지면서 뭘 할지 찾고 있어. 근데 그게 3년이 된 거야.


지금 대운은 나한테 정관인 해수가 내 월지의 묘목이랑 해묘 반합을 해. 미토를 만나 목국을 이루려고 하는 거야. 목은 나한테 인성에 해당하고 목국이면 인성 바다가 되는 거야. 작은 강들이 모여 바다가 되는 것처럼 인성의 특징인 생각하는 거, 기록하는 거, 글 쓰는 거, 공부하는 거 자꾸 이런 것만 관심이 가고 손이 가는 거야. 정관이 인성으로 흐르는 방향이니까 직업도 그런 쪽으로 풀고 싶고.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뭐, 두 눈을 감고 걷는 거 같아.




작가의 이전글 발리에 글 쓰러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