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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석 Dec 04. 2023

사람의 한계, 내 영의 갈망

          물건은 품질(品質)이 좋아야 하는 반면, 사람은 성질(性質)과 품성(品性)이 좋아야 한다. 사람의 성질(性質)과 품성(品性)을 다른 말로 인성(人性)이라 한다. 인성(人性)을 결정하는 성(性)에는 이성(理性), 지성(知性), 감성(感性), 덕성(德性), 영성(靈性) 등이 있다. 이성과 지성은 상당히 비슷한 말이며, 영성과 덕성도 비슷한 말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성을 이루는 중요한 성은 이성, 감성, 영성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이성과 지성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이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 사람의 한계상황에 관하여 깨달은 이해를 나누고자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철학적인 질문은 ‘사람이란 무엇인가?’이다. 사람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믿음에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으로 신을 믿고, 신앙고백하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2:7은 사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a living soul)이 된지라 (창 2:7).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육체(flesh)와 영(spirit)을 가진 ‘살아있는 혼(a living soul)’으로 창조되었다. 혼으로서의 사람은 육체와 영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겪는다. 육체의 한계와 영의 갈망 사이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실존철학은 육체를 가진 사람의 한계상황(boundary situations)을 인정한다. 한계상황이란 사람이 변화시킬 수도, 피할 수도, 뛰어넘을 수도 없는 조건이다. 사람의 한계상황, 영의 갈망, 성경 가르침을 대비하고자 한다.

         첫째, 사람은 죽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쉽지만, 모면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 하지만, 사람은 영적인 존재로서 영원한 생명을 갈망한다. 죽음의 한계에 부닥친 사람에게 성경은 영생을 약속한다. 땅에서 입고 있는 육체가 무너지면,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몸을 입게 된다고 약속한다(고후 5: 1-4).” 

         사람은 방황하고 헤맨다. 어느 누가 일찍부터 의미와 분명한 목적을 지향(志向) 하면서 인생길을 가겠는가?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신(神)의 입을 통해 "사람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신은 “언제나 지향하며 노력하는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많은 경우, 사람은 헛된 것을 좇다, 길을 잃고 방황한다. 자라면서, 만화, 판타지 소설, 게임 등에 빠지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술, 도박, 성, 사이비 종교, 탐욕에 빠지기도 한다. 허무주의에 빠져서 삶을 비관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사람은 영을 가진 존재로서 참된 의미를 찾고, 영광스럽게 살기를 바란다. 성경은 사람이 변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고후 3: 18). 영원한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 방황은 반드시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일 것이다. 인생길의 방황과 고생은 의미가 있고,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에 이르게 한다(고후 4:17).

          사람은 투쟁한다.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싸우고, 투쟁하기 마련이다. 바이러스, 암, 세균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삶은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다. 입시전쟁, 취업전선, 승진, 주택난, 교육비, 노후대책 등으로 애쓰고 고민한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사람은 다치기도 하고 사납게 된다. 영을 가진 사람은 또한 평화와 안식을 갈망한다. 성경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쉼과 평화를 약속한다(마 11:28, 요 14: 27). 부활 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평화(Shalom)”라고 인사했다. 

          사람은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사람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점치고, 손금보고, 꿈을 해석하려 한다. 알면 믿을 필요가 없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한다. 영원한 생명, 죄 사함, 천국, 부활, 새 하늘과 새 땅(신천지)은 믿음에 속한 것이다.

         사람은 죄짓고 살아간다. 사람은 땅 위에서 불의한 일을 행한다. 사람은 죄와 불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상황 속에 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하늘에 계시지만, 사람은 땅 위에서 불의한 체로 살아간다. 하지만, 내 영은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바란다. 이러한 갈망을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표현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하늘에 오를 수 없는 존재이다. 성경은 예수께서 죄를 용서해 준다고 말한다(엡 1: 7). 예수께서 병을 고치시듯이, 죄도 고쳐 주실 수 있다(막:2 :5).

         사람은 혼자로서 외롭고, 고독하다. 코로나 기간에 사람은 고독한 존재임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동시에, 영을 가진 사람은 사회를 이루고,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사랑하고 돕고 살기를 갈망한다. 영적인 존재는 공동체로, 즉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람도 공동체로 존재한다. 천국에서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공동체로 살아있다.

         사람은 공동체에서 자라고,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자라면, 관계의 범위가 넓어진다. 어릴 적에는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좀 자라면, 부모, 형제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더 자라면, 마을, 국가, 인류,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미숙에서 성숙으로

자기에서 우리로

의존에서 독립으로

독립에서 상호 의존으로 발전한다.

천국은 우리이며, 상호의존의 공동체이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한다.

주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한 가정을

한 피를 나눈 사람이 한 가족을

한 골짜기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한 마을을

한 문화, 한 가치를 공유한 사람들이 한 나라를

한 믿음, 한 하나님을 모신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이룬다.  

하늘나라는 우리이다.   

내가 우리로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기도와 일이 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죄짓고, 불의하고, 땅의 것을 찾고, 헛된 것을 추구하고, 헤매고 방황한다. 결국, 사람은 죽는다. 사람은 누구나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삶의 무게에 신음하고, 고민하고,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이와 함께, 영을 가진 사람은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 영의 사람은 자유, 평화, 정의와 같은 불변하는 가치를 갈망한다. 또한, 영원한 생명, 천국, 새 하늘과 새 땅을 갈망한다. 신앙의 세계에서 천국은 종착역이 아니다. 사람은 영의 의미를 찾고 보람되게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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