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거지 나사로

하늘은 누구를 기억하는가?

by 남상석

성경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대문 앞에는 헌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는 거지 나사로가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웠다. 개들까지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다. 그러다 두 사람 모두 죽었다.

거지는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받았다. 그가 불 속에서 외쳤다.

“아브라함 조상님, 나사로를 보내어 내 혀를 시원하게 해 주십시오. 나는 이 불 속에서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얘야, 살아 있을 동안 너는 호사를 누렸고, 나사로는 괴로움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이 대답은 오늘날 구원 교리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낯설다. 살아서 호사를 누린 것이 왜 지옥의 이유가 되고, 가난과 병고가 왜 천국의 조건이 되는가? 부자가 특별히 죄를 지었다는 말은 없고, 나사로가 특별한 선행을 했다는 기록도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엇갈린다. 도대체 왜 그런가?


나사로 : 살아서 거지, 병든 몸 -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 - (?)

부자 : 살아서 호사 - 지옥에서 고통 - (?)


이 이야기는 ‘어떻게 살았는가, 누구를 기억했는가’를 묻는다.

흥미롭게도, 나사로의 이름은 기록되었지만 부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세상에서도, 하늘에서도 기억되지 않았다. 반면,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사로는 하나님께 기억되었다.

이 차이는 단순히 ‘소유와 가난’의 문제가 아니다. 아브라함이 말한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구절이 그 이유를 암시한다.

부자와 그의 형제들은 그 말씀을 알고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만 생각했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지옥의 고통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타인과 단절된 삶이 남긴 영혼의 고통이었다.

예수의 말씀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는 이 이야기를 더욱 깊게 한다. 인간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도 하늘의 위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역설이 바로 복음이다.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는 이름 없이 사라지고, 누군가는 기억된다. 그 차이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마음이 어디를 향했는가에 있다. 자신만의 즐거움에 머문 삶은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지만, 고통 중에도 타인의 눈물을 볼 줄 아는 마음은 신께서 기억하신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이름은 ‘많이 가진 자’의 이름이 아니라 신께서 기억하는 이름이다.

나사로는 그 이름으로, 그 고난으로, 하늘의 품에 안겼다.

이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너의 이름은, 누구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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