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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도시를 움직이는 힘

by 남상석

에너지의 비유 ― 관계가 만들어 내는 힘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식(E=mc²)은 20세기 과학의 상징이다. 질량(M)은 불변의 상수(C²)와 결합할 때 비로소 엄청난 에너지를 낸다. 물질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에너지로 변환된다.

이 원리는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는 비유로도 확장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과 열망 역시 홀로 있을 때는 쉽게 소모되고 흩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변하지 않는 가치와 만날 때, 그 열망은 창조적이고 지속적인 힘으로 전환된다. 관계가 에너지를 만든다.

인간 혼의 목마름 – 루이스의 통찰

C.S. 루이스는 “인간 폐지(The Abolition of Man)”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진·선·미라는 객관적 가치를 향한 갈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외면하면 인간다움 자체를 잃는다.”

그의 말처럼 인간의 혼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진리(眞), 선(善), 아름다움(美)이라는 영속적 가치를 향한 목마름을 지닌다. 개인의 욕망은 일시적이지만, 그것이 공동체와 정의, 사랑, 아름다움으로 향할 때 그 에너지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즉, 에너지는 ‘가치’와 결합할 때 비로소 사회를 세우는 힘이 된다.

서울의 도시 재생 – 가치와 결합된 에너지

청계천 복원 – 자연과 인간의 연결 회복

청계천은 산업화 시절 콘크리트 고가도로에 덮여 있던 하천이었다. 복원 사업을 통해 맑은 물길이 다시 열리고, 시민이 자연과 만나는 산책로와 쉼터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재개발 공사가 아니라, 사회와 자연의 관계를 회복한 사건이었다.

선유도 공원 – 버려진 산업 시설의 재생

한강의 작은 섬 선유도는 오래된 정수장이 있던 자리였다. 버려진 콘크리트 구조물을 철거하지 않고, 온실과 연못, 생태정원으로 재생시켰다. 폐허가 자연과 예술의 공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는 에너지가 가치와 만나면 소멸이 아니라 창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sunyewdo.jpg 선유도 공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 창의와 아름다움의 광장

과거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DDP는 자하 하디드의 곡선 디자인으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곳은 전시·패션·디자인이 융합되는 광장으로, 아름다움이 도시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시장주의의 그림자와 주거의 위기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은 이렇게 경고했다.
“The most corrosive effect of putting a price on everything is not only that it leads to inequality, but that it corrupts the very meaning of the goods being bought and sold.”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는 가장 해로운 결과는 단순한 불평등이 아니라, 사고파는 대상의 본래 의미 자체가 부패되는 것이다.)

오늘의 도시 현실에서도 우리는 이 경고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한때 사람들이 삶을 나누던 동네들은 임대료 상승과 상업화로 변하며, 생활의 흔적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웃의 인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자리에는 이제 소비의 발걸음과 음악 소리만이 남아 있다.

주택 시장 또한 다르지 않다. 집은 더 이상 단순한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투자와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취급된다. 가격이 오를수록 계층 간 격차는 벌어지고, 주거가 상품화될수록 집이 지닌 본래 의미, 안정된 삶의 터전은 위협받는다.

가치가 사라질 때, 공간도 혼을 잃는다. 그때 도시의 질서는 무너지고, 사람의 관계는 흩어진다. 도시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높은 건물이나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사람의 혼이 깃든 가치의 회복이다.

가치와 결합할 때 나오는 힘

도시를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힘은 더 높은 가격의 상품이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와 결합한 에너지다. 청계천의 자연 회복, 선유도의 생태 재생, DDP의 창의적 공간 창출은 모두 그 증거다.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말하듯, 질량은 홀로 에너지가 되지 못한다. 상수와 결합할 때 비로소 힘을 낸다. 인간의 열망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욕망은 소모되지만, 정의와 연대, 아름다움 같은 변하지 않는 가치와 결합할 때, 그것은 창조적 에너지로 바뀌어 도시를 새롭게 한다. 결국 도시의 지속 가능성은 성장의 지표가 아니라, 그 도시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그것과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맺는말

혼이 깨어난 사람은 세상을 바꾼다.

그의 열망은 탐욕이 아니라, 참된 것과 선한 것,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향한다.

도시의 빛은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혼의 성숙에서 나온다.

한 사람의 혼이 곧게 설 때, 그 삶이 질서를 낳고, 그 질서가 세상을 움직인다. 창발은 그 순간 일어난다.

혼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 빚어지고 자라나는 존재다.

혼이 자라는 길 ― 그것은 곧 인생의 여정이며, 세상을 밝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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