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남자 5 ― 삶을 다시 짓는 남자

손끝으로 건물을 만들던 사람이, 다시 ‘삶’이라는 건축을 짓는 이야기

by 트렌트

작업실 문을 닫던 날,
내 손끝엔 여전히 본드 냄새가 남아 있었다.
16년 동안 내 손을 잡고 있던 냄새였다.
이제는 그 냄새를 놓아야 했다.

“이제 뭐 하지?”
그 말이 공기처럼 흘러나왔다.
아내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괜찮아요. 당신은 뭐든 해낼 사람이에요.”

그 말이 묘하게 따뜻하게 남았다.
그때부터 나는,
무너진 자리 위에 다시 삶을 짓기로 했다.

며칠 뒤,
오랜 친구처럼 지내던 옆집 형이
맥주 두 캔을 들고 찾아왔다.

“현장 한 번 나와볼래?”
“현장이요?”
“응, 토목 쪽이야. 힘들긴 한데 버틸 만해.”

그날 밤,
아내가 잠든 옆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 손이 다시 흙을 만져도 괜찮을까?
이제는 막내로 돌아가야 하나?

결국 나는 새벽 첫 기차에 몸을 실었다.
손엔 헬멧 하나, 마음엔 결심 하나.

현장은 늘 시끄러웠다.
기계 소리, 욕설, 웃음, 흙먼지, 그리고 땀 냄새.
첫날, 내 몸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야, 신참! 철근 묶는 거 그렇게 하면 안 돼!”
“예, 다시 하겠습니다!”

저녁엔 손이 떨리고,
팔은 들리지 않았다.
숙소 침대에 누우면
몸이 바위처럼 굳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피로 속에서 묘한 평온이 피어났다.
그래, 난 아직 버틸 수 있구나.

현장은 길었다.
일주일짜리도 있었고, 한 달 넘게 이어지는 곳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현장 근처 숙소에서 살았다.
작은 방, 오래된 매트리스, 희미한 형광등 불빛.

하지만 하루를 마치면
내 손이 세상을 조금은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걸 느꼈다.

밤이 되면,
나는 휴대폰을 켜고 영상통화를 걸었다.

“아빠!”
화면 속에서 막내가 손을 흔든다.
“오늘은 뭐 했어?”
“오늘은 흙 다졌어. 큰 건물이 들어올 자리야.”
“아빠가 지은 거야?”
“응, 아빠가 다진 거야.
아빠가 다지면, 세상이 서.”

쌍둥이들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아빠, 힘들지? 우리도 도와줄게.”
그 말에 웃음이 났다.
“그래, 아빠도 힘낼게. 내일도 잘 버티자.”

아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여보,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당신이 아프면 우리도 무너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목이 메었다.
“응… 걱정 마요. 나 괜찮아.”

통화를 끊고 나면
숙소는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엔
가족의 목소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새벽 다섯 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세면대의 찬물이 얼굴을 때렸다.
거울 속의 나는
예전보다 단단해진 얼굴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건 다시 태어나는 일이구나.’

퇴근 후,
숙소 구석의 낡은 책상 위에 노트북을 올렸다.
낯선 화면.
‘워드프레스 블로그 만들기’
‘해외 구매대행 시작하기’

이해되지 않는 단어 투성이였지만,
희한하게 설렜다.

이번엔 건물이 아니라,
내 인생을 짓는 일을 해보자.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삶의 새로운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40살,
다들 “이제 안정해야지”라고 말할 때,
나는 또 다시 시작을 택했다.

낮에는 흙을 다지고,
밤에는 글을 쓴다.
손으로 일하고, 마음으로 기록한다.

내 인생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공이 목적이 아니다.
무너져도 다시 세우고,
흔들려도 다시 다진다.

그게 내 방식의 삶이다.

가끔 새벽에 혼자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그럴 때마다 아내의 말이 떠오른다.
“당신은 이미 절반은 성공했어요.
무너져도 다시 일어났잖아요.”

그 말을 되새기며
나는 또 하루를 다진다.

삶의 바닥은 단단해야 한다.
그래야 꿈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제 나는 안다.
삶을 짓는다는 건,
흙을 다지는 일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지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아직 공사 중이다.

하지만 그게 좋다.

살아 있다는 건, 여전히 짓고 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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