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는 아주 유명한 소설이다. 걸리버는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이러한 여행은 휴가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는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난다. 세상을 탐험할수록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여행에 대한 갈망은 커진다. 부양할 가족이 존재함에도 여행을 다닌다. 여행을 시작하고 소인국이라는 특이한 나라를 경험한 후 영국에 돌아온 뒤에도 그는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그에게 여행이란 자신의 꿈이자 원동력 그리고 걸리버 그 자체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그는 자신의 꿈을 따른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걸리버처럼 살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안한 삶을 지향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 위험 없이 안정적인 삶에서 오는 편안함을 지향한다. 그러나 걸리버는 이러한 삶을 거부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호기심을 바탕으로 여행을 떠난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위험천만한 삶에서 일상을 보내고 싶어 한다. 이러한 걸리버의 모습을 보고 '나에게 걸리버의 여행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나에게 여행이라고 볼 수 있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걸리버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니, 잠시 현실에 안주하며 잊고 있었던 나의 꿈과 나의 의지가 생각났다. 우리 모두 가끔씩 나의 꿈을 이루는 상상을 하고 이러한 상상에 의지와 열정이 불타오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가 얼마나 지속되었는가? 다시금 현실에 안주하고 편안함에 만족하며 나의 꿈을 접어놓지 않았는가?
우리의 꿈은 큰 목표부터 작은 목표까지 다양할 수 있다. 성공한 사업가나 작가라는 직업적 목표부터 멋진 몸이란 단순한 목표까지.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걸리버처럼 지속해 보았는가? 만약 당신의 꿈이 성공한 사업가라면 걸리버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해야 할 것이다. 물론 편안한 삶이 좋을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기 싫을 수도 있고, 가끔은 자신의 일에 게을러져 늦잠을 자는 것을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일장일단이라는 말이 있듯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그것으로부터 오는 단점이 존재하는 것 또한 이해해야 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걸리버는 자신의 가족까지 포기했다.
여담이지만, 걸리버의 결말은 이렇다. 걸리버는 후이넘이라는 섬에서 이성적인 말 종족을 보고 그들을 존경한다. 그리고 야후라는 야만적인 종족을 보고 인간을 떠올리며 이성적인 말이 모여있는 후이넘에 남아있기를 원하지만 인간은 야후와 닮았다는 이유로 후이넘에서 쫓겨난다. 이후 영국에서 그는 여생을 야후와 같은 인간을 혐오하며 말들과 함께 산다. 결국 인간사회에서 인간을 혐오하고 소외된 삶을 살지만 그는 끝까지 이성적인 말이 좋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삶을 살아간다. 닫힌 신념이라고 볼 수 있지만, 걸리버다운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달리고 안주하지 않으며 걸리버처럼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여행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당신의 여행을 이루기 위해 살고 있는지.